지난달 26일 경남 창원에 있는 두산중공업 공장을 찾은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자.그는 원자력 및 터빈 공장을 둘러보면서 설비의 무게,재질 등에 대한 세심한 질문까지 빠뜨리지 않았다. 손수 가져온 카메라로 공장 구석구석을 화면에 담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원전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인 이유는 두산중공업이 현재 만들고 있는 국내 신고리3 · 4호기(발전용량 1400㎿급) 원전이 UAE에 공급될 원전과 같기 때문이다. 이날 모하메드 왕세자와 동행한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은 "모하메드 왕세자의 말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두산중공업이 보유한 원전 기술력에 대해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파업 일삼던 공기업에서 글로벌 민간기업으로
두산중공업이 현재와 같은 글로벌 위상을 갖게 되기까지는 4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1962년 설립된 이 회사(당시 한국중공업)는 발전사업을 키워왔지만 노동조합의 잇따른 파업과 공기업으로서의 태생적 한계에 늘 부딪혀 왔다. 하지만 2000년 두산그룹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변신'이 시작됐다. 당시 골병이 든 회사를 다시 살려내기 위한 구원투수로 ㈜두산 상무를 맡고 있던 박지원 현 두산중공업 사장이 투입됐다.
두산중공업은 2002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철,화공,시멘트 등 기존 저수익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대신 발전,담수화 설비,플랜트 등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수십년간 회사의 발목을 잡아온 노사 분규도 사라졌다. 2000년대 초 매출 2조원짜리였던 두산중공업은 작년 기준으로 매출 6조원대 회사로 3배 이상 성장했다. 2002년 17%에 불과했던 해외 수주 비중도 현재 70%대로 늘렸다. 중동지역 담수 플랜트 분야에선 세계 시장 점유율을 40%로 끌어올렸다. 박 사장이 "두산중공업은 민영화된 국내 공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유다.
◆원천기술은 M&A로 확보
두산중공업은 2008년 가을 비밀리에 M&A 작업을 벌였다. 체코 터빈업체인 스코다 파워 인수에 나선 것.발전분야의 핵심 설비인 터빈 관련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1년 가까운 협상을 거쳐 작년 9월 인수에 성공했다. 두산중공업은 스코다 파워 인수를 통해 보일러-터빈-제너레이터로 이어지는 '풀 라인업'을 구축,국내외에서 수행하는 발전설비 공사에서 그동안 외국 업체에 의존해온 터빈을 자체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원천기술 확보는 불황을 극복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두산중공업의 승부수였다. 그동안 두산중공업은 M&A(인수 · 합병)를 통해 2005년 담수설비(두산하이드로테크놀러지),2006년 발전소 보일러(두산밥콕) 관련 원천기술을 잇달아 확보했다. 작년엔 터빈(스코다 파워) 관련 원천기술을 확보하면서 '대장정'을 사실상 마쳤다.
담수설비,보일러,터빈 등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한 두산중공업은 친환경 발전 분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이산화탄소 포집 · 저장(CCS) 원천기술 보유 업체인 캐나다 HTC사 지분 15%를 확보했다. 성기종 대우증권 연구원은 "두산중공업은 2005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해외 기업 인수를 바탕으로 향후 원전과 발전설비,담수플랜트 시장에서 잇따라 수주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상 첫 11조원 수주 도전
두산중공업은 올해 1분기 매출 1조2787억원,영업이익 727억원의 실적을 각각 기록했다. 전년 동기대비 매출은 10.4%,영업이익은 23.2%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1분기 실적이 경기 회복세와 맞물려 비정상적으로 높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올 1분기 총 수주 금액은 7443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30.4% 늘었다. 회사 관계자는 "수주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수주 실적이 대폭 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매출과 순익도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초 원전을 앞세워 사상 처음으로 수주액 11조원을 돌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가는 급증하고 있는 수주액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 모양새다. 지난 3월 9만36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요즘 7만원 안팎을 맴돌고 있다. 두산을 둘러싼 루머로 인해 주가가 빠졌다가,최근에야 간신히 회복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두산중공업의 목표 주가는 10만원 안팎.추가 상승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봉진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 부진 요인은 해외 플랜트 수주 지연으로 인한 관련 업종의 투자심리 위축과 그룹사 전체의 재무리스크 우려 탓이었다"며 "오히려 40억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라빅 프로젝트 등 대규모 수주가 예상되고 있어 저가 매수에 나서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지구의 가치=두산중공업의 가치'
'지구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두산중공업의 신문 및 방송 광고 카피다. 발전 및 담수화 설비 등으로 대표되는 두산중공업의 글로벌 사업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이기도 하다. 지구의 가치를 높일 수록,회사의 가치도 높아진다는 뜻도 담겨 있다. 두산중공업은 현재 중동 지역이나 인도 태국 등의 개발 국가들에 발전 및 담수화 설비를 수출하고 있다.
원전 분야는 특히 회사의 명운을 걸고 차세대 핵심사업으로 육성 중이다. 2030년까지 발주될 원전은 총 1200조원 규모로 추정될 정도로 세계 원전시장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어서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두산중공업은 이미 2008년 미국에 신형 원자로와 증기발생기,터빈 발전기를 공급했다. 1980년대 초 외국 회사로부터 기술을 배워 원전 기자재를 제작했던 회사가 근 30년만에 원전 종주국인 미국에 주기기를 수출할 만큼 성장한 것이다. 작년 말엔 한국전력 컨소시엄과 함께 UAE 원전사업을 수주,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박 사장은 "원전을 포함한 발전과 담수화 설비 사업뿐만 아니라 풍력,연료전지 등 신 · 재생 에너지 사업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적극 육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