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사업가와 부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사업가는 사업을 통해 부를 쌓은 사람이지만 부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사업가는 성공에 대한 자부심으로 자기 성취욕이 강하고 어디를 가든지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반면 부자는 돈 많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필자의 지인 중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성공한 P 사업가가 있다. 그는 필자와 만날 때마다 항상 “돈이 없네요.” “지갑이 비었네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내가 ‘돈이 많으냐’고 물어본 적도 없고, ‘밥값을 내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나만 보면 돈 없다는 얘기부터 하는 것이다.

처음엔 나한테만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를 아는 또 다른 지인이 나한테 하소연했다. “그 분은 세계가 인정한 부자인데 왜 저만 보면 돈이 없다고 하시죠? 저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하시는 건지, 아니면 돈을 빌려달라는 말은 아예 하지 말라는 건지, 정말 속을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어쩌다 그 같은 부자가 ‘돈 없다’는 말버릇을 갖게 된 걸까. 하루는 하도 궁금해 그한테 직접 물어봤다. “돈이 그렇게 많으시면서 어쩌다 만나는 사람마다 돈 없다는 말만 하고 다니세요? 누가 보면 오해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도 자신의 말버릇을 알고 있는지 은근히 변명을 했다. “그게요, 한국 사람한테는 돈이 많아도 많다고 할 수 없어요. 돈 많다고 자랑하면 그때부터 곳간이 비기 시작한다니까요.” 그는 사람들이 부자 돈은 좀 써도 된다고 생각하고, 부자는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서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돈 많은 사업가이면서도 부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싫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300년 그리고 14대 째 내려오는 경주의 유명한 최부자 집의 가훈(家訓)을 보면 여섯 번째로‘십리 안에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이 있다. 옛날 부자는 이렇게 가훈으로 정하여 부자의 도리를 후손들에게 가르쳐왔다. 그래서 역사 있는 부자는 자신이 사는 고을 주민들은 절대 굶기지 않았다. 그들은 흉년으로 기근이 닥치면 반드시 큰 굿을 올렸다. 굿을 올려 마을의 평안을 빌고, 더 나아가 떡, 과일 등 굿에 쓸 음식들과 제수용품을 사들여서 마을 경기를 좋게 했다. 굿이 끝나면 노인부터 아이까지 배불리 먹지 못한 주민들에게 쌀과 떡을 나눠줬다.

혼자의 힘만으로 재산을 모으고, 재산을 지키는 부자는 없다. 옛날 부자는 십리 안의 사람들을 굶기지 않았고 주민들을 배부르게 먹였다. 부자들은 자기들을 위해 일하는 충성스런 일꾼들을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려울 때 곳간을 열어 베풀었던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부자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다. 부자가 몇 대를 걸쳐 내려 올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부자는 달리 부자가 아니다. 하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돈을 쓰라고 그 사람을 부자로 만들었을 뿐이다. 재산은 결코 죽어서까지 가져갈 수 없는 법. 사는 것은 잠깐이요, 부자로 사는 것은 더 잠깐일 수 있다. 만약 하늘을 대신하여 부자의 미덕을 행하면 더욱 부자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의 부를 회수해 갈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돈 이상의 것이 필요한 법이다. 지갑을 열지 않는 큰 부자보다는 조금은 베풀면서 자유스럽게 사는 작은 부자가 더 행복하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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