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전업주부가 백화점에 30여개 매장을 두고 헤어패션 사업으로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30대 후반에 창업해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가발이라는 아이템으로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주위에서는 콧방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김영휴 씨크릿우먼 대표는 당찬 사업가로 성공기를 써가고 있다.

김 대표는 사업 초기 주위로부터 "집에서 애들 잘 키우고 살림이나 하지.왜 남편이 돈을 적게 벌어주나 봐" 등 온갖 냉소를 들어야 했다. 남편마저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주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로 반대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김 대표는 2001년 6월 씨크릿우먼을 창업했다. 김 대표는 "사실 창업 7~8년 전부터 남몰래 혼자 연구하고 고민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해왔다"며 "어렸을 때부터 옷을 직접 만들어 입기도 하고 결혼 후 살림을 하면서 소위 '리폼'해 쓰는 등 손재주가 좋아 사업 아이템으로 제격이어서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가발을 아이템으로 정한 것은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주눅이 들고 자신감도 줄어 들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부분만 보충하면 되는 부분가발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업 아이템을 부분가발로 정했다는 것.

김 대표는 가발 가게로 바로 달려가 통가발을 사왔다. 그런 뒤 가위로 오려 머리의 탈모증세가 있는 부분만 메울 수 있는 부분가발을 만들어 핀으로 머리에 고정시켰더니 탈모부분을 감쪽같이 감출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이리저리 세심히 살펴봤는데 티가 거의 나지 않은 것을 보고 그 동안의 스트레스가 한 순간에 날아가더라"고 회고했다.

김 대표가 하고 다니던 부분가발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가발 하나 있으면 볼륨있는 헤어스타일을 연출하고 싶다"며 어디서 구입했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이렇게 되자 사업을 하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 대표는 "오랜 시간 나름의 시장 조사를 충분히 하고 부분가발이라는 아이템에 대한 믿음이 더욱 확실해졌다"고 소개했다.

회사명이자 브랜드인 '씨크릿우먼 (SSecret Woman)'은 여성들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가려준다는 의미의 시크릿(secret)과 여성이 고객이라는 점을 강조해 '우먼(woman)'을 조합해 탄생시켰다.

초기에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제품을 만들어 백화점에 찾아갈 때마다 문전박대의 연속이었다. "일곱 번 쯤 찾아가야 한번 만나줄까 말까였어요. 부분가발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데다 여성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죠."

행사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매일 서울과 대전을 몇 달 동안이나 오가느라 몸은 파김치가 됐고 외국 기업에서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소송하는 바람에 법정싸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게다가 홈쇼핑에서 소위 대박을 냈다가 반품 때문에 고생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부분가발은 직접 착용해보고 구매를 해야 하는데 모델들이 시연하는 모습만 보고 샀다가 착용감 디자인 등이 맘에 안 든다고 반품을 해와 창고가 반품으로 가득찼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사업에 대한 열정은 결국 국내 최고의 부분가발 업체로 성장시키면서 부분가발을 여성들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시켰다. 김 대표는 "예순 살이 넘은 한 여성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내용의 감사편지를 보내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다이어트나 스트레스 등의 요인으로 여성 탈모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데다 요즘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 여성들도 자신을 젊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헤어 스타일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씨크릿우먼은 그동안 사양산업으로 인식됐던 가발산업을 단순 제조가공이 아닌 패션과 디자인을 접목한 신성장 아이템으로 창출한 혁신형 중소기업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 패션기업으로 성장해 파리,런던,뉴욕,도쿄 등의 해외 유명백화점에 입점해 씨크릿우먼을 세계 속의 패션가발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