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란 무엇인가? 화폐는 바로 돈이다. 돈은 개인과 나라의 살림살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경제학의 표준 교과서에 따르면 화폐는 결국 교환의 매개수단,가치저장의 수단,그리고 가치척도의 단위로 기능한다. 이 가운데 화폐의 핵심기능으로 평가받는 것은 교환의 매개수단이다.

상품을 거래하면서 사람들이 화폐를 거래대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의 화폐가 거래 상품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또 그 가치가 다음 거래에도 그대로 유효하기 때문이다. 물론 화폐만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돈 주고 구입하는 모든 상품은 각각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그 상품이 내구적이라면 가치저장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화폐만 교환을 매개하고 다른 상품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농부가 쌀 20㎏ 한 포대를 내다 팔고 대신 설탕 15㎏과 쇠고기 300g을 사려고 한다. 쌀 20㎏의 값이 4만5000원인데 설탕 15㎏은 1만8000원이고 쇠고기 300g은 2만7000원이므로 농부는 쌀 20㎏으로 설탕 15㎏과 쇠고기 300g을 충분히 살 수 있다. 그러나 이 농부가 정확히 설탕 15㎏과 쇠고기 300g을 쌀 20㎏과 맞교환하려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보다는 쌀가게에 들러서 쌀 20㎏을 팔고 쌀값으로 받은 돈으로 식품가게와 정육점에 들러 설탕 15㎏과 쇠고기 300g을 산다면 일이 훨씬 더 간단하게 풀린다. 이처럼 화폐를 매개로 하는 교환은 물건을 물건과 직접 맞교환하는 물물교환보다 훨씬 더 쉽게 성사된다.

쌀 20㎏의 가치,설탕 15㎏과 쇠고기 300g의 가치,그리고 돈 4만5000원의 가치는 모두 같다. 돈 4만5000원으로는 쌀 20㎏을 즉시 살 수 있고 설탕 15㎏과 쇠고기 300g도 즉시 살 수 있다. 그런데 설탕 15㎏과 쇠고기 300g을 쌀 20㎏과 물물교환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같은 가치인데 왜 교환이 어려운가?

사람들이 설탕과 쇠고기를 원하는 까닭은 그 재화를 소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직접 소비하기 위하여 화폐를 원하지는 않는다. 화폐는 소비할 재화 구입에 필요할 따름이다. 설탕과 쇠고기의 가치 4만5000원은 이것을 소비하려는 사람이 인정하는 가치일 뿐이며 설탕과 쇠고기 소비를 싫어하는 사람도 인정하는 가치는 아니다. 반면에 화폐 4만5000원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치다. 누구나 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쌀이든 설탕이든 쇠고기든 각자 자신이 소비하고 싶은 재화를 돈만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상품의 가치는 이것을 소비하려는 특정 소비자가 부여하는 것이지만 분명히 종이조각에 불과한 화폐의 가치는 신기하게도 모든 소비자가 수용한다. 유독 화폐만이 누리는 일반적 수용성의 신비는 무엇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