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클래식에 빠진 베를린…정명훈의 지휘봉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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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서울시향 독일 콘체르트하우스 공연
드뷔시 '바다' 연주에 객석 흥분…진은숙씨 생황 협주곡 '슈' 갈채
드뷔시 '바다' 연주에 객석 흥분…진은숙씨 생황 협주곡 '슈' 갈채
서울시향이 정명훈씨의 지휘 아래 독일 베를린에서 2일 데뷔공연을 가졌다. 서울시향이 데뷔 공연장으로 택한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는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유서 깊은 콘서트홀로,음악인들에게는 베를린 필하모니만큼이나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국제적인 다문화 도시를 표방하는 베를린답게 객석은 한국 유학생과 재독 교포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청중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빈 객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성황리에 시작된 이번 공연에서는 19세기 말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의 교향곡 '바다',서울시향 상임 작곡가이자 이제는 명실공히 세계 현대 음악의 선두주자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진은숙씨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생황 협주곡 '슈',드뷔시와 함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 작곡가로 꼽히는 모리스 라벨의 '라 발스' 등이 연주됐다.
특히 프랑스 음악에 뛰어난 해석을 보여주는 정명훈씨답게 그가 지휘한 드뷔시의 '바다'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 '인상-해돋이'를 연상시키는 우아하면서도 명징한 소릿결로 넘실댔다. 서울시향은 현악기의 생동감과 금관 파트의 안정된 호흡을 바탕으로 한 볼륨감으로 드뷔시 음악 특유의 눈부시고 찬란한 화음을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이어 연주된 진은숙씨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빛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다는 그의 예술론처럼 물에 비친 진주색 빛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 악기 편성과 각 악기 사용에 대한 진은숙씨의 탄탄한 기본기를 잘 드러내 주는 이 작품과 함께 서울시향의 의욕적인 연주도 뛰어났다.
여기에 협연자로 나선 바이올리니스트 비비아네 하그너의 곡 해석은 전율을 일으킬 정도였다. 하그너의 연주는 단순히 악보의 지시사항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해 내는 것을 넘어 창작자 수준으로 곡을 꿰뚫어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후반부에 그녀가 긴 호흡으로 마지막 선율을 연주하다 마치 영원으로 향하는 듯한 여운을 남기고 끝맺는 부분은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작곡가 진은숙씨에게도,청중에게도 현대 작품을 이토록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연주자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휴식 후 공연된 진은숙씨의 생황 협주곡 '슈'는 독일 초연이기도 했다. 생황은 입으로 불어 소리를 내는데도 오르간 소리가 나는 특이한 악기다. 서양에서는 '구강 오르간'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신화가 이 작품의 주제라고는 하나 다양하게 강조된 타악기 및 생황의 날카로운 선율에서는 오히려 동양적인 색채가 짙게 묻어났다. 작품이 진행될수록 초절기교를 열정적으로 구사한 생황 독주자 우 웨이의 연주는 관객의 열렬한 갈채를 이끌어냈다.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한 라벨의 '라 발스'는 세기말 유럽의 우울한 정서를 감상적인 선율로 표현한 명작.유려한 흐름을 잃지 않는 서울시향의 연주는 작품 속의 찬연한 애수를 여과없이 표현해 냈다.
독일에서는 본 프로그램 이외의 앙코르곡을 연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정명훈씨와 서울시향은 독일인들에게 한국 클래식 공연 특유의 앙코르라는 깜짝 이벤트를 선보였다. 공연 후 커튼 콜 도중 "오늘 오신 분에 대한 감사의 뜻입니다"라는 정명훈씨의 인사말과 함께 갑자기 그의 지휘봉이 허공을 갈랐다. 순간 브람스 헝가리 무곡 2번의 강렬한 멜로디가 객석을 사로잡았다. 서울시향의 베를린 데뷔 무대는 이처럼 화려하고 감동적이었다.
서울시향은 독일 서부 중심 도시인 에센과 뒤셀도르프에서도 공연을 갖는다. 에센에서는 진은숙씨의 작품 위주로,뒤셀도르프에서는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슈만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슈만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이번 공연은 서울시향이 '한국을 대표하는' 또는 '아시아의 유명 교향악단'을 넘어 유럽 음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일류 교향악단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베를린=이설련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