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언제까지 남이 만든 룰에서 피 터지게 싸울 것인가
2006년 삼성전자는 틀에 박힌 직사각형 디자인에서 벗어나 LCD TV의 외관을 V자로 파고 거기에 받침(거치대)을 붙인 '보르도TV'를 출시했다. 전체 모양이 와인잔을 닮은 데서 착안한 이름이었다. '보르도TV'는 최단기간에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데 이어 소니를 제치고 TV부문 세계1위를 차지했다.

성공의 비결은 간단했다. 'V'자 라인 디자인과 '보르도'라는 이름이 전부였다. 텔레비전에 와인이라는 문화코드를 융합하자 시장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특히 방대한 와인의 세계를 선점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은 따라 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와인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플랫폼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오리진이 되라》의 저자는 이처럼 무엇을 하든 '기원(오리진)'이 되라고 강조한다.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것부터 삶의 그림을 새로 그리는 것까지 모든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해 '오리진'이 돼야 한다는 것.그가 말하는 '오리진'은 '스스로 처음(기원)이 되는 사람,게임의 룰을 만들고 새 판을 짜는 사람,그래서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의 운명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벤치마킹으로는 우리가 갈 수 있는 데까지 다 갔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따라서 이제는 절대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가진 무언가를 창조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오리진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오리진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 안에서 서로 피터지게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IT기술을 자랑하는 한국이 애플의 아이팟,아이폰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것은 오리진이 되지 못한 결과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최고,첫 번째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아이맥을 비롯한 'i시리즈'를 만들어 파산 직전의 애플을 모방 불가능한 '오리진'으로 만들어놓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리진'이 되기 위한 창조적 발상법과 영감의 원천들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실감나게 전해준다. 발상법 자체가 기발하다. 가령 첫 번째로 내세운 창조의 법칙이 '목숨을 걸고 사랑하라'다. 일본의 토토가 비데를 개발해 변기를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만든 것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사하고 싶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저자는 그래서 "남이 보지 못한 아픔을 보고,남이 주지 못한 기쁨을 보태면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현대자동차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시장에서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으로 성공한 것은 실직 위험에 직면한 고객의 아픔을 봤기 때문이며,태풍 피해로 수확을 앞둔 사과의 90%를 잃고도 일본 아오모리 농민들이 성공했던 것은 남은 10%의 사과에 '합격'이라는 위로와 희망을 담아 판매했기 때문이다.

책은 '새로운 시공간을 선사하라,뒤집고 섞어라(융합),컨셉트를 창조하라,내가 먼저 주라,마음의 벽을 깨라,예상을 깨는 이야기를 만들어라,느림의 가치를 발견하라' 등 '오리진'이 되는 다양한 길을 안내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