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대전과 충청남북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완패하면서 삼성 롯데 한화 웅진 등 세종시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내몰렸다. 청와대와 여권이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일 동력이 현저하게 약화될 게 뻔한 상황인 만큼 수정안을 전제로 수립해놓은 기업들의 투자계획도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 기업은 대체 부지 물색 등 대안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4일 알려졌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과 연료전지 생산라인 등에 2조5000억원을 투입키로 한 삼성 관계자는 "신속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의 성격상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세종시 입주가 가능한지 빨리 결정되지 않으면 사업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국회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면서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공장 건설 등을 준비하고 있지만 세종시 투자가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한화그룹은 국방과학미래연구소 건립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세종시에 투자키로 한 태양광 발전설비 생산시설은 중 · 장기 프로젝트로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국방과학미래연구소는 연내 착공하지 않으면 방산사업 전개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세종시 입주가 어려워질 경우 국방부와 함께 추진 중인 무기체계선진화사업에도 문제가 생긴다"며 "다른 건 몰라도 국방연구소 설립은 반드시 연내에 결정이 나야 한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모두 9000억원의 투자계획을 세워놓은 웅진그룹은 착공까지 2년가량 여유가 있는 만큼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투자 결정을 번복하거나 다른 곳을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라며 "가급적 빨리 세종시 문제가 매듭지어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1000억원을 들여 식품바이오연구소를 설립키로 한 롯데그룹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회사 관계자는 "투자 결정이 늦어지는 것 자체가 리스크이고 비용이 증가하는 원인"이라며 "세종시 수정안이 장기 표류하면 대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재계 일각에서는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다시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백지화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기업 투자의 생명인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법안이 장기 표류하고 논란 속에서 기업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