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다니엘 메이란 대표 "럭셔리 원천은 匠人 정신…한국 도자기·가구도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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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계 대부' SLBI대표
한국에서 10년째 명품산업을 이끌고 있는 서울럭셔리비즈니스인스티튜트(SLBI)의 다니엘 메이란 대표(66).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그룹의 국내 면세 · 명품사업 법인 블루벨코리아 대표이기도 한 그는 시계부터 양복,넥타이,와이셔츠까지 루이비통을 사랑하는 '럭셔리맨'이다.
그러나 요즘은 돈버는 일보다 사람 가르치는 일로 더 바쁘다. 지난해 아시아 최초의 명품비즈니스 사관학교인 SLBI를 설립,전문인력 양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지난 1일 그를 만났다. 평온한 주택가의 빌라 2층.거실에 들어서자 벽에 걸린 인디고블루톤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음악적 선율을 무대 위에서 색채로 표현하는 프랑스 화가 제라르 에코노모스의 작품이다. 에코노모스는 2008년 내한해 경기필하모닉 지휘자 금난새씨와 '음악과 그림의 이색 만남'을 선보였던 화가. 그를 초청한 사람이 바로 메이란 대표였다.
명품 가격은 교환가치보다 상징가치
맞은편 벽에는 한국 화가의 작품이 세 점이나 걸려 있다. 벽난로 위에는 명나라 때의 목각 불상과 토기 작품이 죽 늘어서 있고 그 옆에는 오래 된 목조3층장이 옛스러움을 더했다. 응접실 탁자에 놓인 벼루를 만져봤더니 돌로 만든 것이었다. "몇 주 전 강의에서 한 분이 '한국에서 럭셔리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묻기에 그랬죠.이미 갖고 있지 않느냐고.우리 문화와 전통 유산이야말로 최고의 럭셔리 아이템이거든요. 보세요. 문화의 가치란 게 이런 거죠.그래서 전 한국문화를 좋아합니다. 된장찌개와 비빔밥 같은 전통 음식,매운 것도 잘 먹어요. 거의 한국사람 다 됐죠.(웃음)"
얼마 전 홍콩의 디오르 론칭 행사에 참석했다가 다리를 다쳐 수술을 받은 지 2주밖에 안 됐지만 그의 표정은 시종 밝았다. 대화도 유쾌했다.
그가 말하는 럭셔리 마케팅의 비결은 이른바 '반대 법칙'이다. 럭셔리는 일반 소비재와 달라야 하고,특별한 방식으로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마케팅 방식과 반대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디자이너의 창의정신을 담아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는 "제품의 판매 방식도 특별해야 한다"며 "모든 것은 크리에이터와 작업의 질에 바탕을 둬야 하는데 중요한 건 다양하고 많은 것을 파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소수의 것을 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 알베르토 핀토를 예로 들며 "하나의 가구를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 파는 것이 진짜 럭셔리이고 그 중에서도 문화 유산의 가치를 활용하는 게 가장 가치있는 명품"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에 가보면 전통 자기가 아주 많습니다. 9세기,12세기 것도 있지요. 지금은 몇 개 없어 박물관에 보관돼 있지만 당시에는 그 도자기들이 수천 개였겠죠? 지금은 희귀하니까 그만큼 중요한 대접을 받는 겁니다. 그러니 희소성이 아주 중요하죠.샤넬 백도 그렇죠.지금은 몇 천개나 되지만 처음엔 아주 특별한 1개로 시작했고 그걸로 럭셔리가 됐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몇 천개의 명품을 판매할 수 있는 럭셔리 산업이 가능한 겁니다. "
해외 브랜드 집착하면 명품주인 못되고 하인 노릇
그에게 럭셔리는 비싼 게 아니라 희소성과 특별함의 가치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한 편의 시를 읽고 '이런 시는 내 평생 단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 특별한 시다'라고 생각되면 이것이 럭셔리입니다. 아무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특별한 것!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유럽에서 럭셔리는 창의력이 뛰어난 장인의 완벽한 질에 기반한 제품,남에게는 특별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특별한 것이지만 아시아에서는 약간 좀 다른 것 같더군요. 더 크고,더 화려하고,더 비싸고,과시적인 특별함을 중시하더군요. "
그는 특히 중국,일본,한국을 비교하면서 그 중에서 한국인과 인간관계를 쌓는 게 가장 쉽고 좋다고 말했다. "일본인은 조금 벽이 느껴지고,중국인은 돈과 관련되지 않으면 인간관계를 만들기 힘들더군요. 홍콩은 정말 사업적인 분위기라 출근해서 일하고 바로 떠나 버려서 삭막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에요. "
그는 어떻게 럭셔리 세계에 눈을 떴을까. 20대 때 루브르박물관이 운영하는 '에콜 드 루브르'에서 2년간 중세 건축예술을 공부하며 흥미를 가졌다고 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심리학과 광고학 공부를 거쳐 라디오프랑스에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르메르디앙 호텔 부사장 시절 '하이 퀄리티와 서비스'에 대해 연구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길로 들어서게 됐다. "더 직접적인 인연은 에어프랑스 마케팅 담당 부회장 시절이었어요. 콩코드기 덕분이었죠.첨단기술을 자랑하는 콩코드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에 기내 디자인 역시 최고여야 했습니다. 유명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면서 럭셔리의 최고 수준을 경험했죠.그 때 체험은 지금까지 도움이 돼요. "
한국의 럭셔리 문화에 대해 그는 "한국 사람들은 항상 외국 브랜드를 좋아하는데 해외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감사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 디자이너 중에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김지해씨의 디자인 감각은 놀랍죠.이런 분들은 톱디자이너가 될 수 있어요. 5년 안에 포토라인에 서는 한국 디자이너가 생길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
그는 또 "삼성이나 LG가 예술작품 같은 물건들을 만들고 한국 영화감독과 배우들도 감동적인 작품을 많이 만든다"며 "다만 럭셔리 마케팅을 통해 이를 세계에 알리고 판매하는 것이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럭셔리는 문화의 문제입니다. 한국인이 매료된 것 역시 프랑스나 유럽의 문화잖아요. 그러니 한국 문화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찾으셔야 할 겁니다. 프랑스나 유럽과 다른 무엇,그것이 럭셔리를 좌우하고 결국 전 세계를 매료시킬 것입니다. "
콩코드기 마케팅하며 럭셔리 비즈니스 눈떴어요
그가 SLBI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4개월 과정의 '럭셔리 기초(인터그레이션) 프로그램'은 4기 졸업생을 배출했고 6개월 과정의 '럭셔리 이그제큐티브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은 1기를 배출했다.
그는 SLBI를 언젠가는 국제적인 '럭셔리 MBA(경영학 석사) 코스'로 키우려는 꿈을 갖고 있다.
럭셔리는 꿈을 먹고 큰다는데 그의 꿈은 무엇일까. 그는 '언제나 새로운 삶을 찾고 새로운 얘기를 찾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친구들과 만나 인생과 꿈을 나누는 것은 참 즐겁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걸 좋아하죠.저도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합니다. 꿈꾸길 멈추면 늙기 시작한다는 말도 있죠.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새로운 걸 시작하고 싶어요. 인생도 그렇죠.오늘은 단지 꿈일 뿐이지만 내일은 그게 현실이 될 수도 있으니까. "
그가 가장 아끼는 명품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하,저기 벽난로 위에 있는 불상입니다. 명나라 시대 작품이라고 하는데 진품증서도 있어요. 인사동의 골동품점에서 구입했답니다. 6~7년 전 샀는데 나중에 그 가게가 사라져 버렸어요. "
인터뷰 말미에 그가 샴페인을 한 병 내왔다. 동 페리뇽(Dom Perignon) 2000년산이었다. 웬만한 와인바에서는 40만원 정도 하는 명품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샴페인 맛을 음미하며 그에게 물었다.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면이 그렇게 끌렸나요? "에어프랑스 기내에서 만났는데…음,미소가 참 좋았죠."
만난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