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라면 걸어야 한다. 걷는 게 제주 여행법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차를 몰고 이름난 관광지만 찍고 다니는 여행 방식은 이제 구닥다리가 됐다. '올레한다'거나 '올레꾼'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제주여행을 하거나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게 다 제주올레길이 생기면서부터다. 제주올레길은 걷기 신드롬을 촉발시킨 주역.2007년 9월 1코스 15㎞가 개장된 이래 모두 19개 코스 312㎞의 길을 아우르게 됐다.

◆오름과 바다길의 어울림

제주올레길은 새 코스가 더해지며 연장되고 있지만 그 시발점은 1코스다. 올레꾼이라면 한번은 찾는 올레의 성지라고 하겠다. 시흥초등학교에서 시작해 광치기 해안에서 끝나는 길은 제주의 오름과 전원풍경,푸른 바다와 하늘빛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1132번 도로변 시흥리 마을의 제주올레 안내소 건너편 농로로 들어선다.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간세'가 머리를 향하고 있는 길가의 풍경이 평화롭다. 나직하게 굽어 돌아가는 현무암 돌담은 올레의 '놀멍''쉬멍'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돌담 안의 화산토는 빗질을 한 듯 가지런해 기분을 개운하게 해준다. 푸른 잎 위에 점점이 하얀 감자꽃은 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입고 뛰노는 여자아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길은 1코스의 첫 오름인 말미오름쪽 나무계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말미오름으로는 올라갈 수 없다. 구제역을 막기 위해 출입을 통제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빨간 경차를 몰고 온 세 명의 외국인이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린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올레꾼을 앞세우고 우회길을 따라 알오름으로 향한다. 길 오른쪽은 키 큰 나무가 숲을 이루고,왼쪽에는 현무암 돌담으로 나뉜 밭이 펼쳐져 있다. 한 굽이 돌면 정면에 나타나는 산담 앞을 지나 파란 철제문을 밀고 들어가면 알오름이다. 야트막한 알오름의 경사면은 초지.그동안의 올레꾼 행렬을 보여주는 한줄기 좁은 흙길이 정상께를 향해 나 있다.

알오름 정상의 탁트인 전망이 제주올레 1코스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다. 왼쪽 아래의 지미봉,가운데의 우도봉,오른쪽의 성산 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조각보 모양을 한 제주도 밭의 조형미도 눈에 쏙 들어온다. 무엇보다 우도와 성산 일출봉 사이의 바다 색깔이 마음에 든다. 바람도 바다색으로 물든 듯 시원하게 땀을 식혀 준다.

◆제주도 제일의 숲길

제주도에서의 걷기여행은 숲길로도 이어진다.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양봉을 치기 위해 놓은 임도였던 사려니 숲길이 걷기 좋은 숲길로 손꼽힌다. 사려니 숲길은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15㎞의 숲길이다. 1131번 도로 교래입구삼거리에서 절물휴양림으로 꺾어들어가기 전의 1112번 비자림로 사이 삼나무 숲길 중간쯤에 들머리가 있다.

사려니 숲길은 평지 숲길이어서 걷기에 좋다. 해발 500~600m 사이 제주 중산간의 숲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혼합림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숲해설가인 나옥실씨는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처럼 이름난 숲길은 단일림이 많지만 사려니 숲길은 여러 나무가 자연 그대로 어우러져 사는 숲길이라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사려니 숲길은 거의 일직선으로 남쪽을 향해 물찻오름과 사려니오름을 지나 1119번 서성로와 만난다. '참꽃나무숲''치유와 명상의 숲' 같은 테마 구역에서 쉬어 갈 수 있다. 들머리에서 물찻오름까지 왕복 2시간 길이 제일 예쁘다는 평이다. 물찻오름을 지나 내려가면 '치유와 명상의 숲' 월든이 나온다. 월든은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지은 책의 제목.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이란 호숫가 오두막에서 2년여간 자급자족했던 숲속생활이 그려져 있다. 글쎄,일상의 속박과 욕심에서 벗어나 자연과 교감하며 단순히 사는 삶을 짧게라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근사한 일도 없겠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숲길 들머리의 잎 넓은 천남성 주변에 환히 핀 노란 금난초와 하얀 은난초에 자꾸만 욕심이 생기니 말이다.

제주=글 · 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올레 1코스는 제주올레에서 가장 먼저 열린 길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학교에서 시작해 말미오름~알오름~중산간도로~종달리회관~목화휴게소~성산갑문~광치기해변에 이르는 15㎞ 코스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제주~서귀포 동회선 일주도로(성산 경유)를 왕복하는 버스를 타고 성산 시흥교회 정류장에서 내린다. 승용차로는 제주시에서 1132번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시흥초등학교에 선다.

사려니숲은 1112번 비자림로의 물찻오름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제주에서 표선민속촌까지 하루 10대가량 버스가 다닌다. 물찻오름 부근에서 성판악휴게소 길과 서어나무숲에서 사려니오름까지 통제된다. 1년에 한번 보름간만 전 구간 개방된다. 올해는 12일부터 27일까지다.

표선에 있는 해비치리조트(02-2017-6500)는 '제주올레패키지'를 내놓았다. 1코스에서 10코스까지 걷기를 원하는 올레길을 편히 오갈 수 있게 호텔 출발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슈페리어 객실 1박,2인 조식 뷔페를 포함해 주중 27만원,주말 33만원.기아차의 신형 K5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K5 패키지'도 만들었다. 바다 전망 객실 1박,K5 24시간 무료 ,2인 조식 뷔페를 포함해 슈페리어룸 기준 주중 30만원,주말 36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