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지방선거 참패 후 세종시 수정 추진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4일 "주요 국가 정책에 대해 리뷰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권이 6 · 2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세종시 수정,4대강 사업 등 주요 국정과제를 기존의 일정과 속도로 계속 밀어붙일 것인가를 놓고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4대강 사업은 몰라도 세종시 수정은 더 어려워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전 · 충남 · 충북 등 충청권 3개 광역단체장에 야당 후보가 일제히 당선되면서 수정안 반대 여론의 장벽에 또다시 부닥쳤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벌써 내각 총사퇴,세종시 수정 철회,4대강 사업 중단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여권은 이처럼 달라진 정치환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야당의 반대가 심한 정책에 대해 속도조절론이 강하게 나오고 있는 이유다. 여권 일각에서는 세종시 '출구전략'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곧바로 폐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제와서 세종시 수정을 철회하면 정국의 주도권을 야당에 완전히 넘겨주는 모양새가 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세종시 수정작업을 리뷰하겠다는 것은 포기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전략을 다시 검토해보겠다는 뜻"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2개월반 계류 중인 세종시 수정법률

정부는 지난 3월23일 세종시 특별법 수정안을 비롯해 5개 세종시 수정 관련 법률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토해양위에 상정도 되지 않은 채 70여일 동안 계류 중이다. 정부는 4월 임시국회 때 처리되기를 희망했지만 야권의 반발,여당 내 친이계와 친박계의 분열 등으로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수정안이 국회에 넘어가 있는 만큼 향후 일정은 정치권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국회가 서둘러 세종시 수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듯한 기류다.

세종시 건설 공사는 대부분 중단된 채 총리실 청사 등 일부 공사만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정부 청사는 2012년 말 입주 예정이었지만 공사 지연으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삼성 한화 롯데 등 세종시 입주예정 기업은 수개월째 투자를 미뤄놓고 있는 상황이다.

◆"수정원칙 변함 없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측은 아직까지 "세종시 수정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도 선거 이후 세종시 문제에 대해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권에서는 정운찬 총리의 향후 거취가 세종시 수정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잣대라고 입을 모은다. 정 총리는 '세종시 총리'라고 불릴 정도로 세종시 수정과 '패키지'로 묶여 있다. 정 총리의 사의 표명은 곧바로 세종시 '출구전략'을 의미한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정정길 청와대 비서실장의 공식 사퇴표명과 달리 정 총리의 사의를 이 대통령이 만류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지난 3일 이 대통령에게 사퇴의사를 표명했으며 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사실상 수용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정 실장과 달리 정 총리의 사퇴의사를 청와대가 외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 미뤄보면 청와대가 세종시 수정을 폐기한 것은 아니다"고 풀이했다. 정 총리는 4일 정부중앙청사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번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시나리오

진퇴양난에 빠진 정부와 여권이 내놓을 수 있는 해법은 △야당과 합의를 통해 '수정안의 수정안(절충안)'을 마련하거나 △차기 정권에서 해결하도록 장기 과제로 넘기거나 △깨끗하게 포기하는 방법 등이다.

'원안 회귀'는 이 대통령의 레임덕과 정국 주도권 상실로 연결될 수 있는 데다,삼성 한화 등 세종시 입주 예정기업의 투자 계획까지 물거품이 된다는 점에서 선택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서는 '장기 과제'로 남겨두는 방안도 거론된다. "MB정부에서는 국정의 비효율을 초래할 수도 분할을 양심상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차기 대선 때 심판을 받거나,차기 정부에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자"는 논리다. 이 경우에도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여권이 '정부부처 이전 백지화' 원칙에서 한발 양보,야당과 타협안을 만드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안이다. 기업과 대학들은 당초 수정안 계획대로 입주하는 한편 정부 부처 2~4개를 세종시로 내려 보내는 선에서 여야 간 절충점을 찾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다면 야당과의 타협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