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4일 아시아 · 태평양 안보 관련 정부관계자 및 학계 전문가 400여명 앞에 섰다.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제9차 아시아안보대화(일명 샹그릴라 대화)'개막 기조 연설을 하기 위해서다. 이 대통령은 해외정상으로는 유일하게 초청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글로벌 아시아의 비전과 한국의 역할'이란 제목의 연설과 이어진 일문일답에서 세 가지에 초점을 뒀다. 천안함 국제 공조,글로벌 코리아의 역할 확대,지구촌 안보문제에서 아시아의 책임 강조 등이다. 아시아안보대화는 싱가포르 정부와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공동 주관해 매년 열리는 아 · 태지역 안보대화체다.

◆"북한,과거에만 머물러"

아시아안보대화는 28개국 안보당국자들이 참여한 만큼 천안함 외교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이 대통령은 우선 "한국 정부는 오늘 북한의 천안함 군사도발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북한에 대해 강하게 날을 세웠다. '유일하게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나라'라고 규정했다. 천안함 사태에 대해 '심각한 군사 도발'이라며 "이번에도 북한을 용인한다면 오히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해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때문에 국제사회가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와 천안함 군사 도발은 결코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이 걸린 심각한 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 평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또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북한의 잘못이 묵인되고 한반도의 안정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북한의 도발은 또 다시 되풀이될 것"이라며 "북한 스스로가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하도록 하는 것은 앞으로 북한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국제사회는 더 강한 메시지를 보내고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이는 대북 제재에 부정적인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는 강력한 설득의 뜻이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대통령은 북한 지도부를 겨냥,"시간을 끌면서 핵무장을 하고 강성대국만 달성하면 살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확실히 버리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의 대북협상 시스템을 반복하지 않을 것임도 분명히 했다. 북핵 폐기의 핵심은 놔둔 채 핵 프로그램의 동결과 보상이 반복되는 협상 시스템에 한계가 있었다는 인식이다.

이 대통령은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이제라도 생각을 바꿔 핵 포기를 결심하고 남북 상생과 공영의 길을 택한다면 우리 국민들도 적극 호응하고 도울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6자회담이 언제 다시 열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그랜드 바겐(일괄타결)'을 타결해 내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일문일답에서도 "북한이 이번 기회에 천안함 사태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6자회담이 열릴 것"이라며 "중국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T-50 세일즈

이 대통령은 4일 리콴유 고문장관을 면담한 데 이어 5일엔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국내에서 개발된 초음속 고등 훈련기인 T-50에 대해 어떤 얘기가 오갈 것인가가 초점이다. 한국은 싱가포르 고등훈련기 프로젝트 입찰에 참가했으며 수주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T-50의 우수성을 설명하며 리센룽 총리의 협조를 당부할 가능성이 높다.

싱가포르=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