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단명(短命) 총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 이후 20년간 일본에선 13명의 총리가 바뀌었다. 평균 재임기간이 1년6개월이다. 같은 기간 중 미국 대통령은 4명이었다. 일본과 같은 의원내각제인 영국도 총리가 4명뿐이었다. 일본의 잦은 리더 교체는 정치 안정과 정책 일관성을 해쳐 국가 전반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일본의 총리는 왜 자주 바뀌는 걸까. 역대 총리의 개인적 한계도 있지만, 일본의 후진적 정치시스템이 근본 원인이다. 무엇보다 총리 선출 방식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국회(중의원)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에 오른다. 문제는 다수당 총재가 파벌의 논리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간 총리의 당선에도 '반(反) 오자와'파의 연대가 큰 힘이 됐다. 요컨대 일본의 총리는 국민이 아닌 정당의 파벌이 결정한다. 태생부터 정통성이 약하다 보니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둘째 총리 후보에 대한 검증이 부실하다. 간 총리는 하토야마 총리가 돌연 사임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덜컥 새 총리로 뽑혔다. 의원들만의 투표로 총리를 선출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짧은 시간에 새 총리를 뽑다 보니 사전 검증은 꿈도 못 꾼다. 총리 본인의 정권 인수 준비시간도 없다.
1년간의 예비선거나 당내 경선을 통해 철저히 검증 받은 뒤 대통령에 선출되고, 2개월간 정권 인수준비를 거쳐 취임하는 미국이나 한국의 대통령과는 비교가 안 된다. 무능한 총리가 나오기 쉬운 구조다. 높은 지지율과 기대를 안고 출발한 내각이 실정을 거듭하며 인기가 급락해 결국 총리가 중도하차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배경이다.
셋째 세습 의원 출신이 많은 것도 문제다. 간 총리 직전의 총리 3명은 조부나 부친이 총리를 지낸 세습 총리였다. 그들을 포함해 직전 총리 8명은 가문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 의원이었다. 물론 정치가 집안 출신이 정치를 더 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평생 좌절이나 역경을 자기 힘으로 돌파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리더로서 문제해결 능력이나 근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조금만 일이 꼬이고, 힘들면 총리직을 내팽개치는 이유다.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총리를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자는 '수상 직선제' 논의가 나오고 있는 건 자연스런 귀결이다. 일본형 대통령제로 전환해 총리의 민주적 정통성과 안정적 리더십을 확보하자는 얘기다.
어쨌든 관심은 간 신임 총리다. 그도 단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상당 부분 안고 총리에 올랐다. 파벌의 논리로 선출됐고,사전 검증도 받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세습의원이 아닌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란 점이다. 세 번의 낙선 등 실패와 역경을 이겨낸 '집념의 정치인'이다. 간 총리의 롱런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일본의 총리 선출 시스템과 정치체제의 또다른 실험이란 점에서다.
도쿄=차병석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