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최고기술경영자(CTO)'로 불리는 지식경제부 연구 · 개발(R&D) 전략기획단장으로 변신한 황창규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사장의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일 전략기획단의 공식출범을 계기로 4조4000억원에 이르는 지경부 R&D 투자의 방향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국가 전체 R&D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황 단장의 향후 행보(行步)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경부 전략기획단은 첫 회의에서 현행 R&D 투자에 대한 구조개편의 윤곽을 제시했다. 순수 기술개발분야 비중을 낮춰 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국제협력 · 사업화 · 표준화 비중을 높이고, 복잡다기한 국가 R&D 사업도 정리해 선택과 집중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황 단장은 특히 세계 유일(only one)기술, 융 · 복합기술 등을 강조했다. 이 같은 시도는 황 단장이 기업 CEO 출신인 점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방향이고, 그동안 지경부에서 나왔던 논의와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우리는 삼성전자를 메모리 반도체의 강자로 우뚝 서게 만든 황 단장이 기왕 지경부의 최고기술경영자 역할을 떠 맡았다면 이를 뛰어넘는 더 과감한 개혁에 나서주기를 주문하고 싶다. 우선, 지경부가 산업관련 R&D 투자를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경로만을 따라갈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정부는 새로운 기술경로 창출의 씨앗을 뿌리는 쪽으로 대대적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경로 창출은 독창적인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혁신이나 새로운 시장, 새로운 수요을 지향하는 파괴적 혁신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지경부 R&D 사업은 기업이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정부 R&D는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하고, 특히 세계 유일의 기술을 위한 창조적인 R&D를 원한다면 실패를 기꺼이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말로만 실패위험 감수를 주문할 게 아니라 실제로 그게 가능한 R&D 체제로 확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황 단장에게 기대하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