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씨(63)는 2009년 서울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이게 채권인지 상품권인지 모르겠는데,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폐 한 장을 건네받았다. 이 지폐는 위조된 유로화로,액면가는 무려 100만유로(약 14억원)였다. 이씨는 위조화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효한 외국통화처럼 해서 처분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받아두었다.

그러다 이씨는 같은 해 외국 은행이 발행한 것처럼 위조된 예금증명서,보관증,잔고증명서 등을 모 기업체 대표에게 보여주며 "금융비용 10억원만 부담해 주면 건설시행사업에 1조원 정도를 투자하겠다"고 거짓말해 10억원을 뜯어내려다 덜미를 잡혔다. 이씨가 검거되면서 그가 소지하고 있던 위조 유로화도 문제가 됐다. 이씨에 대해선 위조사문서행사 및 사기미수 혐의 외에 위조외국통화취득 혐의가 추가됐다.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이씨의 위조외국통화취득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취득한 100만유로 지폐가 국내에서 사실상 유통되는 통화를 위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실제로 통용되지 않는 지폐라면 위 · 변조하거나 취득했다 해도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원심에서도 "실제로 통용될 것이라고 일반인이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 해도,사실상 외국에서 통용되지 않는 지폐라면 형법상 위조외국통화취득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유로 화폐의 최고 단위는 500유로로,100만유로 지폐는 유럽에 없다.

형법은 행사할 목적으로 외국에서 실제로 이용되는 화폐,지폐,은행권을 위 · 변조하거나 취득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에서는 위조외국통화취득 혐의까지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4월을 선고했으나,2심에서는 위조외국통화취득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