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하늘은 많이 들어봤지만 어떤 색깔인진 정작 잘 몰라요. 한국경제신문의 상징 컬러인 인디고블루가 쪽빛이라면 이해가 빠르죠."

지난 26년간 쪽염색 연구에 헌신해온 홍선표 전통천연염색연구소 하늘물빛 소장(52)은 자신을 "쪽이 많이 팔려야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요즘 대학가와 디자인 업계에서 천연염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쪽'은 원산지가 인도인 1년생 풀.인도에서는 지금도 쪽에서 우려낸 염료를 청바지에 쓴다. 해방 전 전라도와 경상도에 쪽염료를 팔아 생계를 꾸리는 가정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후 외국에서 화학염료가 들어오면서 손이 많이 가는 쪽염색 기술은 사라져갔다.

"어머님은 매듭장인이셨어요. 쪽이 자취를 감춘 걸 알고 재현에 나섰죠.전국을 뒤졌는데 쪽을 구할 수 없었다고 해요. 수소문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 밥 한 숟가락 정도의 쪽 씨앗을 구해왔어요. 지금은 쪽을 매년 키웁니다. "

쪽빛은 1000년을 견디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충주박물관에 16세기 때 이응해 장군의 복식유물이 있어요. 금방 염색한 듯 쪽빛이 살아있죠.천연염색 연구가 중에 쪽빛 분야에서만 인간문화재를 인정합니다. "

쪽물을 들인 천 한 필의 가격은 최저 100만원에서 최고 300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 치자 등 다른 천연염료로 염색한 천은 한 필당 30만~40만원에 불과하다. 쪽염료 가격은 ㎏당 10만원 안팎이지만 다른 천연염료의 경우 5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쪽은 항균소독 성분도 뛰어나다. 모기에 물린 곳에 쪽즙을 문지르면 금세 가려움이 없어진다는 게 홍 소장의 설명이다.

쪽염료를 만들려면 4~5월에 쪽을 파종한다. 7월 말쯤 이른 새벽에 수확한 뒤 큰 독에 담아 돌로 눌러놓는다. 며칠 지나 풀을 걷어내면 독 속에 '인디칸'이라는 갈색의 액체가 남는다. 전라도는 갈색 액체에 굴이나 조개껍질을 태워 만든 분말(석회)을 넣어 쪽염료를 빨아들이지만 경상도는 액체를 그대로 발효해 염료를 얻는다.

염색 절차는 더욱 까다롭다. 석회로 걸러내더라도 진흙과 염료가 섞여있는 '니람(泥藍)'에 잿물을 부어 항아리에 담고 군불을 지펴 곰삭힌다. 며칠간 발효과정을 거치면 배추빛깔의 초록색 물로 변하고 여기에 천을 적셨다 햇볕에 말리길 15번 정도하면 쪽빛이 우러난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홍 소장은 얼마 전 건국대 공대 섬유공학 석사학위를 땄다. '박사학위를 가진 인간문화재가 꿈'이라는 홍 소장은 "경험과 '감'에 의존한 천연염색 연구의 한계를 절감한 뒤 체계적인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