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뉴스] '타블로 논란' 중세 유럽 버전을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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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 ‘문서 위조’는 일상화된 현상이었다.
‘위조의 황금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위조가 너무 만연하다보니 중세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선 그나마 얼마 안남아있는 중세 사료중 원본과 위조본을 구분하는데 또다시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게 일상적인 과제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메로빙조 시대 사료의 50% 이상,카롤링조 초기 4명의 왕의 사료는 15% 가량이 위조품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또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시조’격으로 평가받는 칼(샤를마뉴)대제의 이름을 사칭한 위조품은 특히 많아서,칼 대제 이름으로 작성된 270여개 문서 가운데 100여개 정도로 위조본이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선 현재 남아있는 중세 사료의 거의 100% 가까이가 가짜 자료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내놓기도 할 정도로 중세시대에는 위조가 성행했다.(위조의 개념과 그에 대한 죄의식 같은것도 현대와는 매우 달랐다.)그리고 그같은 위조를 행한 주체는 바로 세속의 권력자들과 교회 관계자들이었다.
이같은 중세의 위조행위에 대해선 ‘도덕성의 무감각화’라는 윤리적 비난에서부터 사기행각이라는 시각,중세 고유의 일반화된 심성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세인들이 “천국으로 가기 위한 옳은일을 한다”는 신념으로 적극적으로 위조행위에 나섰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만연하고 흔하디 흔한 위조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게 소위 ‘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寄進狀·Donation of Constantine)’이라고 불리는 문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은 326년 로마제국의 수도를 동방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옛 제국의 수도인 로마와 이탈리아 모든 지역,그리고 로마제국의 서방영토를 당시 교황이던 실베스트로(실베스테르)1세에게로 넘겨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문서는 오랫동안 유럽 서방세계에서 세속 황제권에 대한 교황의 교권의 우위를 정당화하는 증거이자 근거로 활용돼 왔다.역대 교황들은 황제들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이 ‘기증문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 로렌조 발라(1407-1457)가 144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증했다고 선언했던 문건의 허위성과 수정에 관하여(De falso credita et ementita Donatione Constantini declamatio)’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언어학적 분석과 내용고증을 통해 이 문건이 실제로는 750년에서 850년 사이에 만들어졌음을 밝혀내면서 중세 문서의 위조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문서는 교황의 세속권에 대한 확고한 합법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교황청의 한 서기에 의해서 작성된 위조문서 였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 로렌초 발라가 근대 문헌학의 초석을 일군 이후 이 문서의 위조시기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이어졌다.하지만 이 문건이 정확히 언제 위조됐는지와 누가 위조 배후인지에 대해서는 현대의 학자들간에도 의견이 갈린다고 한다.
일각에선 756년경 교황 스테판2세 본인이 연루됐다고 보기도 하고,일부는 스테판2세의 형제이자 후임교황인 바울(파울)1세(757-767)를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미 브랜다이스대의 저명 역사학자였던 베러클로우는 “많은 학자들이 이 문서의 위조연대로 774년을 지목한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문서가 한번에 위조된게 아니라 페이지별로 754년에서 796년에 걸쳐 단계적·계획적으로 위조됐다는 분석도 있다.
여하튼 어떤 위조 연대를 취하건 간에 세속권력과 지속적으로 대립하던 8세기 중반 교황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문건이라는 점에는 큰 이론이 없다고 한다.
당시 교회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위조 문건이 만들어졌고,역시 정치적 필요에 의해 수세기동안 활용되고 재생산돼 왔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 힙합가수 타블로의 미 스탠퍼드대 졸업 학력이 위조 논란에 휩싸였다.사실상 네티즌이 근거없는 악플로 치부되던 내용이 의혹이 꼬리를 물면서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타블로가 실제 학력을 위조했는지,아니면 억울한 피해자에 불과한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번 건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학력’문제가 또다시 주목받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중가수가 노래를 부르는데 학력은 사실상 아무런 관련도 없는 요소지만,타블로가 실제적으로 유명해지고 인정을 받는데는 ‘스탠퍼드대 조기졸업 석사’라는 학벌이 큰 배경이 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세 유럽에서 정치적 필요에 의해 각종 위조문건들이 성행했듯,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사회·경제적 필요에 의해 각종 학벌세탁과 위조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감과 일종의 비판이 이번 학력위조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타블로와 발음이 비슷한 라틴어 단어 ‘타뷸라(tabula)’는 서판이란 뜻이다.과연 최근 논란의 서판에 현대 한국사회가 써나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참고한 책과 사이트>
Geoffrey Barraclough, The Medieval Papacy, Norton 1979
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차용구 옮김, 까치 2002
브라이언 타이어니·시드니 페인터, 서양 중세사-유럽의 형성과 발전, 이연규 옮김, 집문당 1995
차용구,‘중세의 사료 위조에 대한 심성사적 접근’(한국서양중세사학회 홈페이지 http://mahan.wonkwang.ac.kr/medsociety/jn/jn03/forgery.htm )
김동욱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ttp://blog.hankyung.com/raj99
‘위조의 황금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위조가 너무 만연하다보니 중세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선 그나마 얼마 안남아있는 중세 사료중 원본과 위조본을 구분하는데 또다시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게 일상적인 과제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메로빙조 시대 사료의 50% 이상,카롤링조 초기 4명의 왕의 사료는 15% 가량이 위조품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또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시조’격으로 평가받는 칼(샤를마뉴)대제의 이름을 사칭한 위조품은 특히 많아서,칼 대제 이름으로 작성된 270여개 문서 가운데 100여개 정도로 위조본이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선 현재 남아있는 중세 사료의 거의 100% 가까이가 가짜 자료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내놓기도 할 정도로 중세시대에는 위조가 성행했다.(위조의 개념과 그에 대한 죄의식 같은것도 현대와는 매우 달랐다.)그리고 그같은 위조를 행한 주체는 바로 세속의 권력자들과 교회 관계자들이었다.
이같은 중세의 위조행위에 대해선 ‘도덕성의 무감각화’라는 윤리적 비난에서부터 사기행각이라는 시각,중세 고유의 일반화된 심성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세인들이 “천국으로 가기 위한 옳은일을 한다”는 신념으로 적극적으로 위조행위에 나섰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만연하고 흔하디 흔한 위조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게 소위 ‘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寄進狀·Donation of Constantine)’이라고 불리는 문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은 326년 로마제국의 수도를 동방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옛 제국의 수도인 로마와 이탈리아 모든 지역,그리고 로마제국의 서방영토를 당시 교황이던 실베스트로(실베스테르)1세에게로 넘겨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문서는 오랫동안 유럽 서방세계에서 세속 황제권에 대한 교황의 교권의 우위를 정당화하는 증거이자 근거로 활용돼 왔다.역대 교황들은 황제들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이 ‘기증문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 로렌조 발라(1407-1457)가 144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증했다고 선언했던 문건의 허위성과 수정에 관하여(De falso credita et ementita Donatione Constantini declamatio)’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언어학적 분석과 내용고증을 통해 이 문건이 실제로는 750년에서 850년 사이에 만들어졌음을 밝혀내면서 중세 문서의 위조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문서는 교황의 세속권에 대한 확고한 합법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교황청의 한 서기에 의해서 작성된 위조문서 였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 로렌초 발라가 근대 문헌학의 초석을 일군 이후 이 문서의 위조시기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이어졌다.하지만 이 문건이 정확히 언제 위조됐는지와 누가 위조 배후인지에 대해서는 현대의 학자들간에도 의견이 갈린다고 한다.
일각에선 756년경 교황 스테판2세 본인이 연루됐다고 보기도 하고,일부는 스테판2세의 형제이자 후임교황인 바울(파울)1세(757-767)를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미 브랜다이스대의 저명 역사학자였던 베러클로우는 “많은 학자들이 이 문서의 위조연대로 774년을 지목한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문서가 한번에 위조된게 아니라 페이지별로 754년에서 796년에 걸쳐 단계적·계획적으로 위조됐다는 분석도 있다.
여하튼 어떤 위조 연대를 취하건 간에 세속권력과 지속적으로 대립하던 8세기 중반 교황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문건이라는 점에는 큰 이론이 없다고 한다.
당시 교회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위조 문건이 만들어졌고,역시 정치적 필요에 의해 수세기동안 활용되고 재생산돼 왔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 힙합가수 타블로의 미 스탠퍼드대 졸업 학력이 위조 논란에 휩싸였다.사실상 네티즌이 근거없는 악플로 치부되던 내용이 의혹이 꼬리를 물면서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타블로가 실제 학력을 위조했는지,아니면 억울한 피해자에 불과한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번 건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학력’문제가 또다시 주목받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중가수가 노래를 부르는데 학력은 사실상 아무런 관련도 없는 요소지만,타블로가 실제적으로 유명해지고 인정을 받는데는 ‘스탠퍼드대 조기졸업 석사’라는 학벌이 큰 배경이 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세 유럽에서 정치적 필요에 의해 각종 위조문건들이 성행했듯,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사회·경제적 필요에 의해 각종 학벌세탁과 위조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감과 일종의 비판이 이번 학력위조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타블로와 발음이 비슷한 라틴어 단어 ‘타뷸라(tabula)’는 서판이란 뜻이다.과연 최근 논란의 서판에 현대 한국사회가 써나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참고한 책과 사이트>
Geoffrey Barraclough, The Medieval Papacy, Norton 1979
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차용구 옮김, 까치 2002
브라이언 타이어니·시드니 페인터, 서양 중세사-유럽의 형성과 발전, 이연규 옮김, 집문당 1995
차용구,‘중세의 사료 위조에 대한 심성사적 접근’(한국서양중세사학회 홈페이지 http://mahan.wonkwang.ac.kr/medsociety/jn/jn03/forgery.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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