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폰4'를 발표하던 지난 8일.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정보기술(IT)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아이폰4에 부품을 공급하는 상장사 명단을 입수하고도 최종 확인이 안됐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이목이 쏠린 제품에 부품을 공급하는 만큼 주가에 호재일 텐데 부품업체들은 한결같이 사실 확인을 기피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생산 부품과 매출 등을 감안할 때 아이폰4에 부품을 공급하는 게 확실한 데도 해당 업체들은 강하게 부인한다"고 토로했다.

상장사들이 주가에 호재인 정보를 굳이 감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애플과 부품사들이 맺은 계약에 포함된 '비밀유지' 조항에 있었다. 신제품 사양이 먼저 노출될 것을 우려한 애플 측이 제품 개발단계부터 철저한 보안을 요구한 것이다. 실제로 한 국내 부품사가 애플의 태블릿PC '아이패드'에 2차전지용 보호회로를 공급키로 한 사실을 발표했다 계약을 취소 당한 사례까지 있어 부품업체들로선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애플은 상장사의 정보제공 통로인 공시제도도 교묘하게 피해 간다는 게 증권가의 지적이다. 한국거래소 공시규정에 따르면 직전 사업연도 매출의 10% 이상을 수주한 경우에만 공시의무가 있다. 이 규정을 피하기 위해 애플은 잘게 쪼개서 발주한다는 얘기다.

결국 아이폰4 부품 공급업체가 어디인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정보가 돼 버렸고,투자자들은 온갖 추정과 루머에 따라 투자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개성 넘치는 이벤트를 펼쳐 유명하다. 발표 전까진 철저히 베일로 감싸고 심지어 역정보를 흘리며 신비감을 극대화하는 전략도 쓴다. 하지만 기업들이 가치를 평가받고 그에 따라 투자자금을 끌어모으는 자본시장은 모든 투자자에게 정보가 공평하게 공급돼야 하는 곳이다. 미국 나스닥에 등록된 애플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공시시스템인 '에드가'를 통해 기업 정보를 꼬박꼬박 공시한다. 그러면서 협력 부품업체들의 정보 공개를 막는 것은 국내 증시 투자자들에게 횡포가 아닐 수 없다.

강현우 증권부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