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자산 549억달러→1조3282억달러,직원 수 1만6636명→16만5062명,지점 수 632개→9799개.'

이탈리아 국책은행이었던 '크레디토 이탈리아노'가 1993년 민영화되면서 지난해까지 16년 만에 이룩한 경영성과다. 자산기준 세계 18위로 올라서면서 간판도 '유니크레딧'으로 바꿔 달았다.

당초 크레디토 이탈리아노는 우리나라의 산업은행격인 이리(IRI)의 자회사였다. 지방색이 강한 이탈리아에서 산업 중심지 밀라노를 근거지로 한 조금 큰 지방은행 정도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민영화와 함께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자율 경영이 허용되자 본격적으로 인수 · 합병(M&A)에 나서며 지금은 유럽 22개국에 영업망을 갖추고 HSBC,산탄데르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은행이 됐다.

◆정부지분 일시에 분산 매각,민영화 성공

1990년대 초 유럽 경제통합으로 정부의 자국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금지되자 이리는 자회사 은행들을 민영화해야 했다. 당시 이리는 크레디토 이탈리아노의 지분 3분의 2(8억7900만주 · 지분율 67.1%)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리는 이 중 8억4000만주를 매각하기로 하고 40%인 3억3600만주를 주식시장에서 공개 매각했다. 나머지 5억400만주는 국내 기업과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에 팔았다. 절반 정도는 베네통 피아트 라이방 등 이탈리아의 주요 기업들이,나머지 절반은 체이스 일본생명 등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인수했다. 그 과정에서 주주들의 보유한도를 기관투자가는 전체 2%,개인투자자는 1%로 정했다.

세르지오 에모티 유니크레딧 부회장은 "민영화의 핵심은 완전한 자율 경영의 보장"이라며 "정부가 개입하면 꼭 필요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영화 후 공격적 M&A로 눈부신 성장

유니크레딧은 민영화 후 본격적으로 대형화와 글로벌화를 추진했다. 민영화 이후 5년 동안 롤로 방카,카리베로나,카사마르카,카사 디 리스파르미오 카르피 등과 합병해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디토 이탈리아노가 출범했다. 주가는 민영화 이전의 10배로 높아졌다.

1999년부터는 중부와 동유럽으로 기반을 확장했다. 폴란드 은행 페카오를 시작으로 불가리아 최대 은행인 불뱅크,크로아티아 3위 은행인 스플릿스카 방카,루마니아의 데미르뱅크,터키의 콕 그룹,체코의 지브노스텐스카 방카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2005년에는 독일 2위 소매은행인 HVB그룹과의 합병에 성공했다. HVB그룹은 2000년 뱅크 오스트리아 크레디탄스탈트와 합병한 터여서 유니크레딧은 독일뿐 아니라 오스트리아까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유니크레딧은 덩치는 키웠지만 철저히 보수적인 영업을 구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정부 도움을 받기는커녕 17억유로의 순익을 내는 성과를 올렸다. 나이젤 자넹거 유니크레딧 서울사무소장은 "정부 소유였을 때는 통제가 심했고 M&A나 해외진출 등 공격경영을 할 수 없었다"며 "민영화가 유니크레딧의 대형화와 글로벌화의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밀라노(이탈리아)=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