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치러진 지방자치선거가 54.5%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겨우 절반을 넘긴 정도 참여한 것을 높다고 해야 하니 민주주의란 누군가에겐 '남들의 귄리 행사'로 이뤄지는 제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침 선거 직전에 호주 시드니에 갔다가 그곳에선 투표가 의무라는 사실에 놀랐다. 정당한 이유없이 투표를 안하면 2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권리와 의무는 이렇게 양면이다. 똑 같은 것인데도 자기가 알아서 하면 권리요, 남이 강제해서 하게 되면 의무인 것이다.

기업과 관련된 논의 가운데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이슈는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다. '책임'이란 단어가 주는 뉘앙스 그대로 기업들은 이 새로운 '규제'에 부담스러워 하고 있고 일반인들은 그런 기업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실제로 CSR이 기업으로선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올해말 제정될 사회적 책임 관련 국제표준인 'ISO 26000'에 영향을 미친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단체와 기관투자자 등이었다. 기업이 '제대로' 활동하는지를 '감시'하겠다는 분위기가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는 지배구조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인권 노동 환경 관련된 문제는 없는지, 더 나아가 소비자와 지역사회의 참여 등에도 신경쓰고 있는지를 평가하겠다는 것 등이 모두 기업에는 짐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모두 비용 증가 요인이 되고 빠른 의사결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면이 분명히 있다.

국내의 경우 기업들이 준비가 덜 된데다 인식 정도도 낮아 정부 차원에서도 국제 표준 논의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결국 국제사회는 사회적 책임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업들도 새로운 국제표준에 맞춰 경영관행을 바꿔야 하고 정기적으로 보고서도 제출해야 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표준을 지키지 못해 국제입찰이나 글로벌 경쟁에서 뒤질 수 밖에 없다. 오히려 국제사회에서는 이런 책임이 기업의 활동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용어에서 '기업'을 빼고 그냥 '사회적 책임(SR)'으로 용어를 통일했다. 정부 비영리기관 등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책임을 강조한 것인데 어떻게 보면 기업은 짐을 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진 셈이다.

아무리 국제표준이 제정되더라도 문제는 분명히 있다. 실제로 많은 미래학자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성장 보다는 분배를 가치있게 생각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결국 부(富)에 대한 욕망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지나치게 책임을 강조하다보면 부를 꿈꾸고 달려드는 도전적인 기업가가 점점 사라지고 결국 성장동력을 잃게 된다는 예측이다.

그러나 국제표준까지 제정되는 현실이라면 이 의무를 기회로 볼 수 있도록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책임이 아니라 권리로 보는 시각을 가져야 회사 전체의 경영 관행을 혁신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면서 오히려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회책임소비(SRC)를 하는 소비자들이 선택해주고 사회책임노동(SRL)을 하는 근로자들이 그에 걸맞게 행동하게 되면 사회책임정부(SRG)도 이 정책을 지지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김영호 유한대 총장,최근 '인간개발연구원 조찬'에서)이라는 설명이 빨리 상식이 돼야 한다.

사회적 책임은 이제 비즈니스의 기본 바탕이 됐다. 국내적으로 볼 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이 주목을 받는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 모델이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것 등이 그 증거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