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국민이 크게 변하기로 치자면 아마도 독일 국민을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 같다.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졌다가 다시 패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경제기적을 이룩한 근면하고 성실한 국민성도 그렇지만,그처럼 전후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전혀 다른 의식을 지닐 수 있게 됐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그들은 지금 세계 그 어느 국민보다 평화를 사랑하고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 국민이 됐다. 물론 전쟁과 역사의 교훈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배운 것이 있겠지만,그들은 진심으로 과거를 뉘우치고 잘못을 인정하며 다시는 지난날의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피해를 입힌 이웃과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이 점에서 독일은 일본과 크게 다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역사교육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975~84년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뮌스터에 머무르던 시절 필자가 느낀 독일의 또 다른 힘일 것이다.

독일은 나치시대의 만행과 비행을 숨김없이 젊은 세대에게 가르쳤고,앞선 세대가 무엇을 잘못했으며,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역사교육을 통해 진지하게 가르쳤다. 이에 비해 일본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고로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한 1930년부터 패전한 1945년까지 15년의 역사를 대충 얼버무리고,자세한 역사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달리 말해 역사의 일부분을 단절시킨 셈이다. 그로 인해 일본의 젊은 세대는 과연 어떤 일이 그때 정말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며,배우지 않은 만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여기에서 두 나라 젊은이들의 역사관,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을 가지고 왜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하고 잘못을 인정하라고 '윽박지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 일본의 잘못에 자신들은 전혀 책임이 없는데 이웃나라의 지탄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이 점은 독일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 면에서 인식에 큰 차이를 보인다. 독일인들은 과거 역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받으면 이렇게 말한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때, 할아버지의 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후손이고,그 덕에 독일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선진국 국민으로 대접받으며 혜택을 누리고 산다. 내가 누리는 것이 바로 우리 앞 세대의 덕인 만큼 그들의 잘못도 우리가 일정 부분 책임질 의무가 있다. "

역사는 이처럼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의식이 대폭 변화된다. 일본과 독일의 역사교육이 크게 다른 것은 아마도 '공존(共存)의 체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일본은 섬나라로 외국 군인이 첫발을 디딘 게 1945년 패전 후 미군 진주가 처음이었을 정도로 외부 세계와 단절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수천 년의 혈통이라는 덴노(天皇)는 영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 만큼 그들은 다른 국민과 공존의 경험을 가지지 않았고 '일본인'이라는 문화적 동질감을 모든 국민이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독일은 프랑스와 9세기까지 공동의 역사를 지니고 카를대제 사후 843년 베르뎅조약에 의해 독일과 프랑스가 갈라졌다. 그전에 로마제국을 비롯해 여러 차례 등과 어깨를 맞대며 살아온 나라들이라 유럽인들은 겹치는 역사가 많고 공존을 항상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다. 유럽연합은 바로 그들의 이러한 기본의식에 뿌리를 둔 것으로 2차 세계대전 후의 역사는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 역사교과서로 가르칠 정도다.

우리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다른 민족과의 공존경험이 적고 의식도 약하다. 이웃이라야 일본과 중국이 전부였다. 그나마 일본은 섬나라이고 중국은 조공관계로 경계를 긋고 섞이는 것을 막아내며 순혈주의에 익숙했던 국민이다. 이제 세계는 글로벌화돼 가고 있으며 우리 사회도 다문화로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우리가 곧 세계 자체인 오늘날 다음 세대에게 시대에 걸맞은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의 핵심은 '공존의식'을 뿌리내리는 데 두어야 할 것이다.

이원복 만화가·덕성여대 교수

한국경제·우리은행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