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문제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대통령은 11일 비상경제대책회의 겸 고용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방에 가면 건설경기가 부진해서 바닥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 당국이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난 5일 싱가포르 경제인연합회 소속 기업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하반기부터는 부동산도 본격적으로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방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경기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대책을 마련하라는 원론적인 발언"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이 대통령은 지방 경기를 살리기 위해 과감한 규제 완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 대통령이 '지방'을 언급한 것은 집값 하락과 미분양의 고통이 수도권에 비해 훨씬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부산 해운대지구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지방 주택시장은 거의 무너진 상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수도권 집값이 많이 떨어진 것도 걱정하고 있다. 지방선거 참패에 집값 하락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을 잘못 건드렸다가 지방 경기를 살리지도 못한 채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집값만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지방 경기만 살리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방에는 주택대출 규제인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 다주택자에 대해서도 양도세를 중과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택을 매입하려는 수요가 없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던 2~3년 전에 분양 물량이 쏟아져 공급 초과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은행 등은 이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다수의 정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부동산 경기를 안정시킬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정부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실제 현장에서 건설경기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 체감하기 시작한 것 같다"며 "대통령의 발언이 구체적인 정책이나 제도로 나타날지 주목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을 살리기 위해 '수도권' 규제를 풀 것인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라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홍영식/장규호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