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철우씨(22)는 12일 오후 8시께 서울광장에서 학과 동기들과 그리스전 응원 행렬에 동참할 예정이다. 붉은 물결을 이뤄 한마음 한뜻으로 태극전사들의 선전에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다. 직장인 이호승씨(33)는 서울메트로에서 마련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미술관 특설무대에서 한국의 월드컵 첫 경기를 응원할 계획이다.

지구촌 축구팬들이 4년간 기다려온 2010 남아공월드컵이 11일 막을 올렸다. 4800만 '붉은 악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한 야외 응원장이나 집에서 저마다 응원 준비를 마친 상태다.

1954 스위스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이래 여덟 차례나 본선에 오른 한국 축구는 '원정대회 첫 16강' 진출이 지상 목표다. 8개조 가운데 아르헨티나 그리스 나이지리아와 함께 B조에 속한 한국은 12일 오후 8시30분 그리스와 숙명의 첫 대결을 벌인다. 1차전을 이겨야 16강 진출을 바라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배수진을 친 채 승리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한국팀 주장 박지성은 11일 공식훈련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오직 내일 어떻게 이길지만 생각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생각하는 것은 단 한 가지,16강밖에 없다"고 각오를 밝혔다. 허정무 감독도 "우리도 이제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가 됐다"며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팀은 이날 오후 그리스전이 벌어지는 포트 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훈련을 했다. 허 감독은 그리스와 경기에 선발 출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전팀의 골키퍼로 정성룡(성남)을 세웠다.

그동안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는 통산 네 번째 월드컵 무대에 오르는 이운재(수원)였지만,선수들의 체격 조건이 좋은 그리스와 첫 경기에는 순발력과 공중볼 처리 능력이 좋은 정성룡을 내보내는 쪽으로 허 감독의 마음이 기운 듯하다.

대표팀은 이날 주 포메이션인 4-4-2로 마지막 전술 훈련을 했다. 최전방 투톱은 박주영(모나코)과 염기훈(수원)이 서고, 좌 · 우측면 미드필더에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청용(볼턴),중앙 미드필더에 김정우(광주 상무)와 기성용(셀틱)이 배치됐다. 염기훈이 전방과 미드필드,박지성이 왼쪽과 중앙으로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상대 수비진을 괴롭힐 전망이다.

허 감독은 "고지대에 있다가 내려와 선수들의 호흡도 좋아졌다. 잔디 상태도 우리 잔디와 큰 차이가 없다"며 모든 준비를 마쳤음을 시사했다.

한국-그리스의 격돌 못지않게 한국에 중요한 경기는 12일 오후 11시 시작되는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의 대결이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려면 그리스를 꺾는 게 급선무이지만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 경기 결과도 중대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팀은 일단 아르헨티나가 나이지리아를 꺾어주길 바라고 있다. 허 감독은 "아르헨티나가 3전 전승을 하더라도 아르헨티나가 1차전에서 나이지리아를 큰 점수차로 잡아준다면 금상첨화"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B조 최강 아르헨티나를 한국이 이기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16강에 오르려면 승점 5점이 안정권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3전 전승(승점 9점)이나 2승1무(승점 7점)로 독주해 줄 경우 한국은 승점 4점(1승1무1패)을 얻고도 16강 진출을 바라볼 수 있다. 오는 17일에는 적으로 만날 아르헨티나를 온 국민이 응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