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되어 프랑스 파리로 다시 날아가고 싶다. ('나비') 자연과 우주의 영혼뿐만 아니라 생명의 잉태,반야심경의 공즉시색(空卽是色)까지 매끄러운 브론즈 표면 사이로 흐른다. ('화') 만물이 생장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영원한 생명을 갈구한다. ('생장')'

한국 추상조각의 거장 문신(1923~1995년)의 작품에는 언제 봐도 호쾌한 생기(生氣)와 묘기(妙技)가 함께 묻어난다.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15주기 기념전이 23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인사동 남경화랑에서 펼쳐진다.

도쿄 일본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수료한 문씨는 곤충류나 조류 등 생명체의 유기적 형상을 추상 조각으로 표현해 온 작가. 1961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조각가로 방향을 튼 후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유고에서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1991년에는 프랑스로부터 예술문학기사 훈장을 받았다.

이번 전시 주제는 '고독과 신비의 좌우 변주'.기하학적 모형에 생명사상을 풀어낸 흑단조각,석고원형,드로잉,채색화 등 20여점이 소개된다. 주목과 흑단,브론즈,스테인리스 스틸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그의 작품은 클래식 리듬처럼 재질도 매끄럽다. 기하학적 구조가 갖는 엄격함에다 용의주도함이 응축되면서 정교한 미감을 빚어낸다.

'나뭇잎'은 우주만물의 생성을 조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흑단을 갈아내는 과정에 새겨진 특유의 문양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1991년작 '무제'는 균제와 비균제가 절묘하게 화음을 이룬 비대칭 작품이다. 군더더기 같은 이미지를 제거하고 생명성과 리듬감을 중시했다. 자연의 활력을 노래하는 선율도 은은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구상성이 돋보이는 작품도 등장한다. 1989년 작 '여왕벌'은 서유럽 순회전을 앞두고 1986년 도록에 실린 드로잉을 조형한 작품이다. 막 비상하려는 여왕벌의 형상을 통해 우주의 생태미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문씨는 평생 '예술의 세계는 제자도 스승도 없다.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일 뿐이다'라는 미학적인 화두를 내걸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개척,일본과 프랑스에서 한국 조각의 위상을 높였다. 문신의 예술 정신을 기리기 위한 미술관도 줄을 잇고 있다. 마산의 시립문신미술관,시립문신원형미술관,숙명여대 문신미술관 등이 차례로 문을 열었으며,현재 경기도 양주에 문신 아틀리에가 건립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창훈 남경화랑 대표는 "출품작의 대부분은 마산시립문신미술관과 숙대 문신미술관에서 빌려온 것들"이라며 "문신 특유의 균제미를 보여주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02)733-1411

김경갑 기자 kkk10@han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