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중심가 유라쿠초역 맞은편에 있는 가전양판점 빅카메라.소니가 1층 TV 매장 입구에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일본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 혼다 게이스케의 사진과 함께 46인치 3D(3차원 입체영상) TV를 전시해놓았다. 그러나 전시대는 썰렁할 정도로 사람이 드물었다.
소니는 2006년 삼성전자를 제치고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파트너 자격을 따냈다. 그만큼 월드컵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지난 11일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개막식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남아공월드컵에 맞춰 3D TV 시장에서 바람몰이에 나서려고 했지만 제품 출시가 늦어져 일정이 크게 뒤틀어졌기 때문이다. 월드컵 파트너 효과도 반감됐다.
'3D'는 소니가 삼성전자에 내준 TV 시장 선두 자리를 되찾기 위해 꺼낸 비장의 카드였다. LCD(액정표시장치)와 LED(발광다이오드) TV 등 한국 업체들에 밀린 시장을 뒤엎고 새 판을 짜려는 야심찬 전략이었다.
FIFA와 함께 월드컵 25개 경기를 입체 영상으로 제작해 전 세계에 송출하는 주역도 소니다. 하지만 지난 10일에야 일본에서 첫 제품을 내놨고 한국 등 다른 나라에는 월드컵이 막을 내릴 때쯤 제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소니가 3D 판은 열었지만 정작 '3D TV 월드컵 대전'에서는 삼성과 LG의 재주를 구경해야 할 처지다.
◆3D TV 기선 잡은 삼성전자
삼성전자 이탈리아법인에 최근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대형 공간을 찾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월드컵 기간 VIP(주요 고객)와 현지 언론인 등을 초청,이탈리아 대표팀 경기를 3D 입체영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14일 열리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첫 경기 관람 장소는 밀라노의 명소인 '10 코르소 코모(Corso Como)'로 정했다. 겨우 첫 번째 관람 장소를 구했지만 실무자들은 또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참가 희망자가 예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탈리아가 결선에 진출할 것에 대비해 모든 직원에게 장소 섭외령이 떨어진 상태다.
지난 2월 말부터 3D TV를 내놓은 삼성전자는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해외법인들은 제품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며 본사에 구매 주문서를 쏟아내고 있다. 국내에서만 2만대,글로벌 시장에서는 27만대 이상을 팔았다. 같은 기간 LG전자도 국내에서 7000대의 3D TV를 판매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요 매장마다 물량 추가 요구가 쇄도하고 있지만 3D 패널 수급이 달려 요청한 물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며 "3D TV는 물건이 없어 못 파는 쇼티지(공급부족)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기장보다 더 뜨거운 마케팅 경쟁
TV 제조사들의 마케팅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월드컵 공식 파트너가 아니라는 제약을 현지법인별 특화 마케팅으로 뛰어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대표팀 경기를 3D로 보는 행사를 마련했고, 스페인에서는 3D LED TV 체험버스를 만들어 2개월간 12개 도시를 순회하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소니도 제품 출시는 늦었지만 마케팅에서는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다. 전 세계로 송출하는 월드컵 3D 영상에는 자사 로고를 넣어 보내고 남아공을 포함한 7개 국가에 '소니 3D 체험 파빌리온'을 설치했다. 3D 축구 경기 관람부터 3D 게임 시연 등의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남아공 넬슨 만델라 스퀘어의 체험관에서는 여성 팝스타 샤키라의 3D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기도 했다.
히로코 사이토 소니 글로벌 스폰서십 담당 부사장은 "소니는 '렌즈에서부터 거실까지'라는 전략을 바탕으로 3D 가치 사슬의 모든 단계를 주도하고 있다"며 "FIFA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3D라는 완전히 다른 축구 시청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 스타를 내세운 스포츠 마케팅 경쟁도 뜨겁다. 삼성전자는 중미와 카리브에서 메시,브라질에서는 호비뉴,아르헨티나에서는 마르틴 팔레르모를 광고 모델로 내세워 3D TV 알리기에 나섰다. 한국에서는 박지성과 이청용을 모델로 내세웠다.
LG전자는 지난달 초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3D TV 로드쇼에 남아공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고 인기 선수인 매슈 뷰스를 초청해 사인회를 가졌다. 멕시코에서는 왕년의 축구 스타 펠레를 주인공으로 '월드컵을 LG 인피니아 3D TV로 거실에서 즐겨라'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소니는 최근 영국 등 유럽에서 카카(브라질)를 모델로 내세워 3D TV를 알리는 광고를 시작했다.
김용만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스포츠는 TV 산업 발전의 자극제"라며 "스포츠의 생동감을 더 잘 전달하려는 노력이 스포츠와 TV 시장의 동반 성장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3D TV 시장은 '폭발적 성장'
시장조사업체들은 최근 3D TV 시장 전망을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3D TV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서치는 지난 1월 올해 세계 3D TV 시장 규모를 123만대로 제시했지만 3개월 후인 4월에는 250만대로 올렸다. 2013년 시장 규모도 당초 목표치인 1500만대에서 1000만대 이상 많은 2700만대로 늘려 잡았다.
아이서플라이는 이달 초 올해 글로벌 시장의 3D TV 판매량이 420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에는 올해의 3배가 넘는 1290만대,2015년에는 7800만대가량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디스플레이서치가 전망한 규모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밝은 시장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