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국내 해운업은 세계 5위의 선박보유국으로 성장해오면서 수출 중심의 한국경제를 뒷받침해왔다. 선박 운항과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에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해운업은 전 세계를 커버하는 물류 · 항만 네트워크와 고객서비스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기간산업이다. 동시에 선박 투자를 위한 대규모 금융차입(통상 선가의 80~90%)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구조적 특성도 지닌다.

이에 따라 선진 해양국가들은 선박펀드제도 도입,각종 세제 혜택 등을 일찍이 도입,지원해 왔으며,경제위기 상황에선 정부의 보증제공,발주선박에 대한 파이낸싱 지원 등을 통해 해운산업을 육성해왔다.

해운업은 대표적인 경기순응산업이다. 세계 경기가 회복할 때 해운 경기도 급속히 성장하고 반대로 세계 경기가 침체되면 해운 경기도 추락한다. 세계 경제 위기로 작년 해운 경기는 침체 국면이 심화됐다. 다행히 작년 말부터 세계 경기가 회복하면서 해운 경기도 살아나고 있다. 해운 경기의 특성상 회복 시기는 해운업 성장을 위한 투자 기회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회복 초기 시점에는 발주량이 적어 신조선 값이 싸고,중고선 가격 또한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운 · 물류업 발전은 국내 수출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고용 창출에도 도움을 준다.

국내 해운업을 육성하려면 우선 선박전문 국제금융기관 육성을 통해 발주 및 인도 선박에 대한 안정적인 자금지원을 도모하고,해운기업들의 경영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2007년 기준 세계 선박금융시장 규모는 신조선 부문 2400억달러,중고선 부문 529억달러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신조선 발주량이 334척으로 이들 선박의 안정적인 인도를 위해 총 20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기업과 화주 간 상생기반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과 대만의 경우 정부의 간접지원 아래 자국 해운기업과 종합상사,화주,조선소,은행 등과 연계해 국가의 주요 화물을 수송하게 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과 업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왔다.

해운기업들도 사업 다각화를 통해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해운기업은 단순히 해상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공급사슬상 화주의 다양한 물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종합물류기업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과제 달성에 앞서 국내 해운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획일적 구조조정 규제를 걷어내는 게 절실하다. 최근 대기업군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재무구조개선 약정의 근본 취지는 재무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다. 이런 목표에서 볼 때 현 시점에서 해운산업에 대한 재무 약정체결은 경쟁력 강화를 유도하는 방안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재무개선약정을 통한 선박 매각,신규투자 억제,추가차입 제한 등은 경제가 어려울 때 선박을 싼 값에 팔고 정작 호황기에 비싼 값에 다시 사들이도록 유도, 해운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대외신인도 하락에 따른 금융차입비용 증가로 연결되기 쉽다. 이는 결국 재무구조 악화라는 동맥경화로 이어져 약정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현재 벌크선 운임지수(BDI)나 정기선 운임지수인 HRCI가 회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해운기업에 대한 재무구조개선 작업은 시기상 적절하지 못하다.

아울러 국내 해운기업들의 브랜드 가치 하락을 불러올 위험성도 있다. 해외 화주들이 재무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공표된 국내 해운기업에 수익성이 큰 장기 화물운송을 의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해운 시황의 빠른 회복으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는 시점에 국내 해운기업에 자발적인 회생의 기회를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때다.

하영석 계명대 교수·국제통상 / 한국해운물류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