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8년 1월.일본 2위 금융그룹인 미즈호는 우선주를 사들이는 방법으로 미국 메릴린치에 12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위기 조짐으로 인해 모두가 움츠리던 때 미즈호의 공격적인 결정은 화제를 모았다. 미즈호에 이어 미쓰비시UFJ금융그룹과 스미토모금융그룹은 모건스탠리와 영국 바클레이즈에 각각 20억달러와 10억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부실과 비효율로 허덕이던 일본 금융회사가 글로벌시장의 강자로 올라서는 신호탄이었다.

미즈호를 비롯한 일본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틈타 공격적인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내실을 다지면서도 계속해서 덩치를 키운 덕분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즈호는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뒤 합병을 거쳐 일본 2위,세계 16위의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공적자금 수혈,합병 후 민영화

미즈호는 2000년 9월 다이이치간교은행 후지은행 니혼고쿄은행 등 3개 은행이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세 은행의 공통점은 공적자금을 수혈받았다는 것.1998년 이들 은행의 부실채권 처리 합산액은 2조3000억엔에 달했다. 당기순손실만 1조엔을 기록했다. 1999년 3월 2조9490억엔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아 가까스로 문 닫는 걸 모면했다.

공적자금 투입 후에도 생존이 불투명했다. 궁여지책으로 합병을 결정했다. 다이이치간교은행과 후지은행은 소매금융에,니혼고쿄은행은 기업금융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이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키로 의견을 모았다.

합병 후에도 경영은 순탄치 않았다. 2001~2002년 또다시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미즈호는 우선주 제3자 배정 방식으로 1조800억엔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다이이치생명 도쿄전력 등 기관투자가 및 기업 고객 3400여곳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시련을 거친 미즈호는 이후 성장가도를 달렸다. 2006년까지 단계적으로 공적자금을 모두 상환했다.

일본에서는 미쓰비시UFJ금융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금융사로 거듭났다. '더 뱅커(The Banker)'가 집계한 '2009년 세계 1000대 은행' 조사에서는 16위에 올랐다. 미즈호는 27개 계열사와 500여개의 점포를 두고 있으며 직원 수는 3만여명이다. 공적자금 투입을 계기로 생존을 위해 대형화를 이뤘고 이후 건전성을 회복하며 공적자금을 상환한 케이스다.

◆인근 은행끼리 모인 지방 금융그룹

일본 시중은행들이 대형화에 나서는 동안 지방은행들은 자체적으로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시중은행과의 경쟁에서 번번이 패했기 때문이다. 지방은행들의 노력은 지방은행 금융지주회사 설립으로 구체화됐다. 인근 지역의 은행을 포괄하는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도 확충할 수 있어서다.

2004년엔 지방은행인 호쿠리쿠은행이 홋카이도은행을 합쳐 호쿠호쿠지주회사를 만들었다. 2006년엔 지방은행인 기요은행과 우리나라의 저축은행 격인 와카야마은행이 합병해 기요지주회사를 설립했다. 같은 해 야마구치은행은 모미지은행과 결합해 야마구치금융그룹을 출범시켰다. 지방 금융그룹의 특징은 산하 은행들의 상호나 영업망을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야마구치그룹의 경우 야마구치은행과 모미지은행 YM증권 YM세이욘카드 등을 두고 있다.

지방의 이점을 살리면서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점이 일본 지방은행 지주회사의 특징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