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존슨은 1908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세계 권투 역사상 흑인이 최강자의 자리에 오른 건 그가 처음이었으나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백인 여성들과 수차례 스캔들을 일으킨 데 이어 급기야 그 중 한 여성과 결혼까지 감행함으로써 흑백을 엄격히 구별하던 당시의 사회적 금기를 깨뜨렸기 때문이었다. 백인들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인식돼 온갖 협박과 위협에 시달리던 그는 1913년 일명 맨 법(Mann Act)이라고 불리는 매춘금지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0개월간 복역했다. '부도덕한 목적으로 여성을 주 경계선 밖으로 수송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혐의였다.

존슨보다 정확하게 30년 뒤 세계 챔피언이 된 조 루이스도 흑인이었지만 그에 대한 백인사회의 반응은 매우 달랐다. 백인의 영역에 멋 모르고 뛰어든 건방진 흑인이 아니라 당당히 미국의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그건 1938년 뉴욕의 양키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8만명의 관중 앞에서 그가 때려 누인 상대가 막스 슈멜링이었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히틀러가 독일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야심찬 기획으로 창조한 독일의 국민적 영웅이 바로 슈멜링이었다. 만약 그때 미국과 독일 사이에 경쟁이 없었다면 루이스의 운명도 존슨의 그것을 뒤따랐을지 모를 일이다.

스포츠와 정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긴밀하게 얽혀져 있다. 특히 그것이 국가 간,인종 간,지역 간의 대결일 때에는 상호 갈등관계가 반영되게 마련이다. 한 · 일 간의 축구나 야구 경기,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크리켓 경기처럼 몇몇 스포츠 이벤트는 당사국의 국민적 자부심과 직결되기도 한다. 또한 스포츠는 자기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유대와 동질의식을 높여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월드컵도 예외가 아니다. 우루과이는 세계 최초로 열린 1930년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다. 1924년과 1928년 두 차례의 올림픽 축구를 모두 제패했던 우루과이는 몬테비데오에 9만5000명을 수용하는 매머드급 경기장을 건설하는 등 의욕적으로 대회를 준비했지만 자존심을 크게 상했다. 대회 개최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참가를 신청한 유럽 국가가 단 한 팀도 없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벨기에 프랑스 등 4개의 유럽 팀이 참가하고 남미 팀들이 대거 참여해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당시 최강팀이었던 우루과이는 이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4년 뒤 이탈리아 월드컵에 불참했다. 유럽에 대한 나름대로의 복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월드컵을 이탈리아 파시즘의 확산에 이용하려던 무솔리니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 됐다.

축구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잉글랜드는 1966년 홈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빼놓으면 성적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 2 대 1로 패했던 순간은 치욕 그 자체였다. 반면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해 큰 상처를 입었던 아르헨티나는 '전쟁 아닌 전쟁'에서 승리해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를 맞았다.

엊그제 우리 태극전사들이 그리스를 맞아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 8년 전 가슴 뭉클해졌던 그 순간이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1997년 국가부도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자 월드컵 개최권을 박탈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국제적 압력 속에 준비한 대회가 아니었던가. 그 해 우리는 당당하게 4강에 올랐고 어떠한 역경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세계 경제위기와 천안함 사건 이후의 불안정한 남북관계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월드컵을 응원하면서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한다면 대한민국이야말로 월드컵 덕에 가장 큰 재미를 보는 국가가 될 것이다.

허구생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