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문학(순수문학)의 문학적 깊이와 엔터테인먼트 소설(장르소설)의 스릴을 동시에 엮어보고 싶었어요. 일본에선 이미 둘 사이의 장벽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본의 젊은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 · 33)가 작년 10월 일본에서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 《쓰리》(자음과모음 펴냄)를 한국어 번역본으로 내놓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올해 '오에 겐자부로상(賞)'을 받았다.

일본 현대문학의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한 해 동안 출간된 문학 작품을 직접 읽고 선정하는 상이다.

"소설을 쓰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을 많이 떠올렸어요. '라스콜리니코프가 과연 어떻해 될까'하는 긴박감을 느끼면서 읽었는데 그런 느낌을 살렸다고나 할까요. 일본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순문학이라고 판단합니다만 독자들에게는 그저 읽고 좋았다,혹은 아니다가 전부 아닐까요. "

《쓰리》는 도쿄에서 활동하는 소매치기 '나(니시무라)'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조직의 보스 '기자키'의 얘기다. '쓰리'는 '소매치기'를 가리키는 일본어.과거 기자키가 계획한 강도살인 사건에 가담했다가 도쿄를 떠났던 니시무라는 다시 도시로 돌아와 목적이나 삶의 의미를 갖지 않은 채 그저 부자들의 지갑을 노리며 살아간다. 어느날 다시 그 앞에 나타난 기자키는 목숨을 담보로 세 가지 임무를 강요한다.

이 소설은 현대사회의 규칙과 테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변두리로 내몰린 개인들,거대한 존재에 의해 조종되는 '운명'에 대한 사색을 담았다. 소매치기 장면을 사실적이고 리듬감 있게 묘사한 대목도 주목된다. 들어가서는 안 될 타인의 영역으로 뻗친 손가락과 지갑의 접점,그 이물(異物)을 잡았던 긴장감이야말로 주인공에겐 살아있다는 쾌감이다.

"일본에서도 쓰리꾼은 독특한 존재죠.어떤 문헌에서 매춘은 인류 최초의 직업이고 그 다음이 쓰리라고 읽은 기억이 납니다. 룰을 정하는 쪽과 부수는 쪽이 있잖아요. 부수는 쾌감을 안고 살아가는 쓰리꾼이지만 더 큰 계획에 의해 이용당하기 쉬운 약자로 표현했습니다. "

작가는 실제로 소매치기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친구를 상대로 손가락 끝의 각도와 감각 등 소매치기 연습까지 했다. 소설 속 기자키가 니시무라에게 들려주는 '운명의 노트'는 작가가 추구하는 또다른 주제다.

권력과 재력,명성에 싫증이 난 프랑스 귀족이 자신의 계획대로 열세 살 난 하인의 삶을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내용이다. '너의 운명을 믿나? 너의 운명을 내가 쥐고 있었을까,아니면 내게 쥐어 잡히는 게 너의 운명이었을까. '

"2001년 동시다발적인 테러 사건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로 전쟁이 확대됐고,무섭다는 생각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과 세계를 움직이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 구상을 구체화한 인물이 '기자키'예요. "

가정과 사회 속의 폭력을 문학적 화두로 삼아 온 그는 2002년 《총(銃)》이란 소설로 '신초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차광》으로 2004년 노마문예상,이듬해에는 《흙속의 아이》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그는 "김인숙 · 공지영 · 하성란 · 조경란 등 한국 여류 작가들의 단편 소설은 재미있고 훌륭하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