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만큼 자르고,용도에 맞게 구부리고,안전하게 보관하며,원하는 곳으로 배달해 준다. " 요즘 전파를 타고 있는 한 TV CF의 카피다. 문구만으로는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는 이 광고의 아이템은? 답은 철근이다. 철강업계에서 기업 이미지 광고는 있었지만,철근과 같은 철강재 자체를 TV 광고 소재로 삼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세컨드티어의 반란

중견 철강업체 대한제강의 이색 실험이 철강 업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TV 광고만이 아니라 이 회사가 추구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철근 토털 솔루션 서비스'.철근 회사의 영역을 철근 제조에서 건설 현장 내 모든 철근 공정을 도맡아 해결해 주는 것으로 확장하고 있다. 광고 카피처럼 철근을 건설 현장의 콘크리트 형상에 맞춰 자르고,구부리는 맞춤 작업과 함께 보관,현장 배달까지 일괄 처리해 준다. 철근(steel)의 A에서 Z까지를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지난 5월 'STAZ'라는 서비스 브랜드를 내놨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B2B 업체로는 드물게 TV 광고는 물론 서울 시내 주요 택시 정거장에도 광고판을 설치했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오완수 대한제강 회장의 장남이자 이 회사 최대주주인 오치훈 부사장(36 · 사진)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유명 컨설팅업체인 아서디리틀(ADL)의 컨설턴트로 일한 오 부사장은 전략적 사고에 익숙하다.

"철강회사의 경쟁력은 일정 수준의 가동률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현대제철,동국제강에 비해 '세컨드티어(2류)'인 우리 회사는 성수기 땐 물건 제때 못댄다고,비수기 때는 쌓인 철근 안가져간다고 항상 컴플레인을 받았습니다. 그 답을 현장에서 찾았습니다. "

철근 비즈니즈 '가치 사슬(value chain)'의 종착지인 건설현장을 탐구하던 그는 상당한 양의 철근 로스(loss)가 생기는 공정에 주목했다. 철근을 구부리고 자르는 과정에서 그의 표현대로 '8m 철근 반은 쓰고 반은 버리는' 정도였다. 이를 해소해 건설사의 원가 절감에 어필하는 것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했다.

"굳이 예를 들어보면 델(DELL)이 중간 유통망을 배제하고 고객의 주문에 따른 맞춤 PC로 성공했듯이 우리도 건설현장의 구체적인 철근 공정에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건설사는 우리에게 철근을 산다기보다 철근과 관련해 우리와 총체적인 관계 맺기를 바라는 거지요. "

STAZ 브랜드는 론칭 1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대형 건설사에서 원가절감을 위해 공동 TF(태스크포스)를 꾸리자는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내년 매출 1조원 목표

STAZ 서비스와 관련해 오 부사장이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내년 4월 평택공장 준공이다. 이 공장이 완성되면 철근을 구부리고 자르는 가공 작업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코일 철근(구부려져 있는 철근)'이 연 50만t 규모로 생산된다. 코일 철근의 단일 공장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오 부사장은 평택 공장 가동으로 STAZ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지난해 7465억원인 매출이 내년에는 1조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한제강은 1954년 설립돼 올해 56년째를 맞는다. 오 부사장의 조부인 창업주 고(故) 오우영 회장이 부산 국제시장에서 차린 못가게가 모태다. 회사 규모를 키우는 데는 부친 오완수 회장(71)이 큰 역할을 했다. 오 회장은 형제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그를 포함해 모두 10형제로,넷째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한 오거돈 한국해양대 총장(62),일곱째가 오성익 전 기획예산처 정책홍보관리실장(57)이다. 대한제강 오형근 사장(51)이 10형제 중 막내다. 이들 형제는 매년 한 차례씩 모여 오 회장의 호를 딴 '해암배' 가족 골프 행사를 가지며 우애를 다진다.

윤성민/장창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