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좋고 가격 싼 PB는 '유통업체 파워'상징

'품질 좋고 차별화한 자체 상표(PB,이마트는 PL) 상품을 확대하라.'

유통업계에 'PB'(Private Brand) 상품이 화두로 떠올랐다. 2007년 이후 PB 상품 비중을 확대하고 품질 향상에 주력해온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CJ오쇼핑 등 홈쇼핑 업체와 농협하나로마트 GS수퍼마켓 롯데슈퍼 등 기업형 슈퍼마켓(SSM),훼미리마트 GS25 세븐일레븐 편의점 등 업태와 업체를 가리지 않고 PB 상품 개발과 확대에 매진하고 있다. 백화점도 예외는 아니다. 롯데 · 현대 · 신세계 등 백화점 3사는 PB 등 경쟁 백화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온리 상품'들을 앞다퉈 늘리고 있다. 이는 PB 상품이 경쟁사와 상품을 차별화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인 데다 PB 비중이 높아지면 그만큼 수익성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바로 만날 수 있는 진열대에 PB 상품

PB 상품은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생산을 주문해 만든 제품에 자사 상표를 붙인 뒤 자사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는 상품이다. 제조업체들이 자사 브랜드를 붙여 다양한 유통채널에서 동시에 파는 'NB'(National Brand) 상품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PB 상품은 대형 유통업체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한 업체의 유통망에서만 판매하는 독점 상품이기 때문에 효율을 내려면 전국적으로 상당수의 점포를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PB 시장이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하고 있는 것도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체를 능가하는 시장 파워를 갖추고 세력 확장에 나섰다는 방증이다.

PB 상품은 소비자와 바로 만날 수 있는 '매장 진열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제조업체들이 NB 상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유통매장에 진열하기까지 필요한 마케팅과 유통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판매가격을 NB보다 낮출 수 있다. PB 상품은 같은 품질과 등급의 NB보다 20~30%가량 싼 것이 보통이다. 소비자에게 동일 품질의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대형마트 PB 비중 20%…美 월마트는 40% 넘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매출에서 PB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07년 10월 3000여개의 PL 상품을 동시에 선보이며 '유통업계 PB 전쟁'에 불을 지핀 이마트는 PL 매출 비중이 2006년 7%에서 지난해 23%로 상승했다. 국내 PB 시장의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홈플러스도 같은 기간 18%에서 26%로 증가했고,2003년 '와이즐렉(Wiselect)' 브랜드로 PB사업에 뛰어든 롯데마트도 11%에서 20%로 급상승했다. 이는 업체들이 품목 수를 확대하고 품질 개선에 나선 결과다. PB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싸지만 질은 떨어지는 상품'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도 괜찮은 상품'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세계적인 유통업체들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미국 월마트의 경우 PL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40%에 달한다. 특히 매출 상위 100개 상품 중 47개가 PL 상품이다. 영국 테스코는 PL 비중이 50%,독일 메트로는 35%에 이른다. 대형마트 3사는 PB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선진 업체 수준인 30~4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전국적으로 2000개가 넘는 점포망을 보유한 농협 하나로마트도 2008년 '엄가선' '참리빙' 등 4개 PB를 동시에 내놓고 상품 개발과 판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까지 매출 비중을 5%(1800억원)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홈쇼핑에서는 CJ오쇼핑이 선두주자다. 속옷 브랜드 '피델리아'와 패션 브랜드 '셀렙샵'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매출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PB는 상품 차별화 · 수익성 제고를 위한 키워드

PB 상품의 비중이 높아지면 해당 업체의 수익성도 좋아진다. PB 상품의 마진율이 NB 상품보다 일반적으로 5~10%포인트 높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상품 차별화'가 PB를 확대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대형마트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면서 업체별로 가격차가 크지 않은 NB 상품만 팔아서는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와 편의점들이 최근 NB 상품을 모방한 수준에서 벗어나 시장 트렌드와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프리미엄급 PB 상품 개발과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민 신세계유통연구소 팀장은 "소비자들은 점포별이나 업태별 차이가 줄어들자 점점 접근성 위주로 매장을 선택하고 있다"며 "고객이 해당 점포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 차별화 요소로 '자체 상표' 상품의 중요성이 점점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