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혼인신고를 끝내고 단기간 결혼생활을 했다 해도 부부 중 한쪽에 결혼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없었다면 그 혼인은 무효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이모씨(37)가 필리핀인 아내 A씨(27)를 상대로 낸 혼인무효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민법상 혼인무효의 사유인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란 당사자 사이 부부로서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할 의사가 합치하지 않는 경우”라며 “부부 중 한쪽만 그럴 의사가 있고 다른 상대방은 아닐 경우,혼인신고를 했다 해도 혼인은 무효”라고 밝혔다.재판부는 “법률상 부부라는 관계를 설정할 의사까지는 양쪽 모두 있었지만 참다운 부부관계를 이룰 의사가 한쪽에는 없었다면 혼인이 합의됐다고 볼 수 없다”면서 “정황상 A씨는 한국에서 취업할 목적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한달 동안 결혼생활을 이어왔으므로 이 혼인은 무효”라고 밝혔다.

이씨는 2008년 8월 필리핀 국적의 A씨와 필리핀에서 결혼하고 다음달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마쳤다.그해 11월 A씨는 한국에 입국해 이씨와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나 1달 만에 가출해 소식이 끊겼다.가출 당시 A씨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결혼했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

1심과 2심에서는 “A씨가 이씨와 한달 동안 부부로 생활했고 A씨의 편지도 혼인관계의 지속과 필리핀 가족에 대한 부양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가출에 이르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