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터널에서 발견한 건 바로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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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제리'로 '오늘의 작가상' 수상한 김혜나씨
"며칠 전 제 소설을 읽고 있는 엄마의 표정이 내내 안 좋더라고요. 그런데 다음 날 '가슴이 너무 아팠어.젊은애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야겠다' 하시데요. "
첫 장편소설 《제리》(민음사 펴냄)로 제3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김혜나씨(27).꿈이나 희망을 갖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20대들의 자화상을 파격적으로 그렸다. 소설 속 성애 묘사는 적나라하다.
"'엄마 읽을 만해?'하고 묻곤 먼저 잤죠.엄마는 단숨에 읽으셨대요. 어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너는 싹수가 노랗다'는 말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하셨다면서요…."
《제리》는 이름을 들어도 알 듯 말 듯한 수도권의 2년제 야간대학을 다니는 스물두 살 '나'의 이야기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포장마차와 호프집,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술과 담배를 달고 사는 그에겐 "꿈이 뭐냐"는 질문이 가장 당혹스럽다.
시간당 3만원을 받으며 노래바에서 일하는 스물 두 살의 호스트'제리'를 우연히 만나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기대려고 하는 사람처럼 욕망과 집착에 빠져든다. 위액을 쏟아낼 만큼 쓰려오는 속을 부여잡고 코와 귀엔 주렁주렁 피어싱을 매단 채,자해적인 성관계에서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이 세상에 실재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나'는 제리에 대한 열망과 절망의 끝에서 비로소 외면해 온 자아와 마주선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교수(이화여대 국문과)는 심사평에서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루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들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다. 소설 속 섹스가 야하지 않고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메타포가 아니라 리얼리티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교롭게도 최근 몇 년 새 88만원세대,청년실업,'루저'논쟁이 가열되면서 (소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세대적인 징후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씨가 4년 전 초고를 완성한 이 소설은 3년 동안 고치고 고친 결과물이다. 평범한 듯 간결하지만 강렬한 문장은 젊은 독자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에도 20대의 정서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열이라면 손가락에 꼽히는 서울 목동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거든요. 지각하고 결석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은 저 빼고 한 명도 없었죠.수업도 재미없고 그야말로 문제아로 찍혔어요. "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패스트푸드점과 호프집 등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번 돈으로는 다시 술을 마시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는,모두에게서 따돌림당하는 이 바닥 삶을 계속 살게 될 거라고' 하소연하는 제리의 대사와 겹쳐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놀 만큼 놀았다고 생각한 순간 '진짜 나는 누구일까'란 고민에 부닥쳤다. 청주대 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소설가 윤후명씨를 만난 것이 운명의 전환점이 됐다.
"요즘 친구들을 보면 부모와 학교,사회가 바라는 대로만 살아오다가 길을 잃어버린 경우가 적지 않아요. 뭘 원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느낌….그러나 캄캄한 삶의 이면 속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나'였어요. 날 괴롭히고 구속하는 동시에 해방하고 구원하는 모든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란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출구가 보였죠. 출구 없는 터널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청춘들에게 미미하게나마 한줄기 빛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글쓰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시간제 요가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김씨의 한 달 수입은 60만원 정도.'오늘의 작가상' 상금(3000만원)이 평생 만진 것 중 가장 큰 돈이다.
"습작 기간 5년 만에 첫 장편 소설로 너무 큰 상을 받았어요. 생활비로 아껴 쓰면서 더 많이 읽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 늦게 찾아온 '문학병' 탓에 공부할 게 아주 많거든요.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첫 장편소설 《제리》(민음사 펴냄)로 제3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김혜나씨(27).꿈이나 희망을 갖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20대들의 자화상을 파격적으로 그렸다. 소설 속 성애 묘사는 적나라하다.
"'엄마 읽을 만해?'하고 묻곤 먼저 잤죠.엄마는 단숨에 읽으셨대요. 어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너는 싹수가 노랗다'는 말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하셨다면서요…."
《제리》는 이름을 들어도 알 듯 말 듯한 수도권의 2년제 야간대학을 다니는 스물두 살 '나'의 이야기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포장마차와 호프집,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술과 담배를 달고 사는 그에겐 "꿈이 뭐냐"는 질문이 가장 당혹스럽다.
시간당 3만원을 받으며 노래바에서 일하는 스물 두 살의 호스트'제리'를 우연히 만나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기대려고 하는 사람처럼 욕망과 집착에 빠져든다. 위액을 쏟아낼 만큼 쓰려오는 속을 부여잡고 코와 귀엔 주렁주렁 피어싱을 매단 채,자해적인 성관계에서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이 세상에 실재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나'는 제리에 대한 열망과 절망의 끝에서 비로소 외면해 온 자아와 마주선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교수(이화여대 국문과)는 심사평에서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루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들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다. 소설 속 섹스가 야하지 않고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메타포가 아니라 리얼리티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교롭게도 최근 몇 년 새 88만원세대,청년실업,'루저'논쟁이 가열되면서 (소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세대적인 징후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씨가 4년 전 초고를 완성한 이 소설은 3년 동안 고치고 고친 결과물이다. 평범한 듯 간결하지만 강렬한 문장은 젊은 독자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에도 20대의 정서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열이라면 손가락에 꼽히는 서울 목동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거든요. 지각하고 결석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은 저 빼고 한 명도 없었죠.수업도 재미없고 그야말로 문제아로 찍혔어요. "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패스트푸드점과 호프집 등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번 돈으로는 다시 술을 마시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는,모두에게서 따돌림당하는 이 바닥 삶을 계속 살게 될 거라고' 하소연하는 제리의 대사와 겹쳐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놀 만큼 놀았다고 생각한 순간 '진짜 나는 누구일까'란 고민에 부닥쳤다. 청주대 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소설가 윤후명씨를 만난 것이 운명의 전환점이 됐다.
"요즘 친구들을 보면 부모와 학교,사회가 바라는 대로만 살아오다가 길을 잃어버린 경우가 적지 않아요. 뭘 원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느낌….그러나 캄캄한 삶의 이면 속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나'였어요. 날 괴롭히고 구속하는 동시에 해방하고 구원하는 모든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란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출구가 보였죠. 출구 없는 터널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청춘들에게 미미하게나마 한줄기 빛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글쓰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시간제 요가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김씨의 한 달 수입은 60만원 정도.'오늘의 작가상' 상금(3000만원)이 평생 만진 것 중 가장 큰 돈이다.
"습작 기간 5년 만에 첫 장편 소설로 너무 큰 상을 받았어요. 생활비로 아껴 쓰면서 더 많이 읽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 늦게 찾아온 '문학병' 탓에 공부할 게 아주 많거든요.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