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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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건설 의존이 위기의 화근
부실채권·저축銀 처리 주목해볼만
부실채권·저축銀 처리 주목해볼만
"태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스페인은 리조트의 명소로 영국 독일 등 북유럽 사람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그렇게 밀려든 해외자금이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렸다. 인구감소를 커버하기 위한 적극적 이민 수용 정책도 주택수요를 뒷받침했다. 연수(年收) 300만엔 정도의 사람들조차 6000만~8000만엔에 달하는 주택을 40~50년 만기 대출을 끼고 과감히 취득하곤 했다. 1400만채의 주택 중 200만채가 빈 집인데도 건설 붐이 지속됐다. "
일본의 이코노미스트 쿠마노 히데오는 《버블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는 책을 통해 부동산 붐이 한창이던 시절의 스페인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태양의 축복'을 향유하며 집과 리조트를 끊임없이 지어댔고 건설업은 번성가도를 달렸다. 해외로부터의 주택 구입 자금은 물론 화창한 날씨를 즐기려는 관광객들까지 몰려들어 나라 살림도 순탄하기만 했다.
하지만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상황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해외로부터의 자금유입은 급격히 감소했고,잔뜩 끼었던 부동산 거품도 함께 빠져나갔다. 경제를 떠받쳐온 건설부문이 노동력을 흡수할 수 없게 되자 실업률은 유로권 최악으로 치솟았고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나라 살림 또한 수입은 줄고 재정 지출은 크게 늘어 엉망이 됐다. 쿠마노는 이처럼 급변한 상황을 두고 "스페인 경제가 해외 자금에 농락당했다"고 표현했다. '태양의 축복'이 '태양의 저주'로 돌변한 꼴이다.
사실 스페인의 체면은 요즘 말이 아니다. 유럽발 금융 불안의 도화선이 된 그리스 등과 함께 묶여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낙오자 취급을 당하는 신세다.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최고등급을 유지하던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심지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조성키로 한 7500억유로 규모의 재정안정기금을 최우선적으로 지원받아야 할 나라로 꼽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역시 최고치 대비 20%가량이나 떨어진 부동산가격 급락과 은행권의 부실채권 증가다. 특히 주택 관련 대출이 많은 저축은행들은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 저축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5.3%에 이르렀고 올해 말엔 7.5% 선까지 높아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페인 정부가 최대 저축은행 카하수르를 국유화하는 등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이 나라 경제의 15%를 차지하는 건설업이 회복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미국 등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험한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부동산 경기는 단기간 내엔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0%를 넘는 재정적자를 줄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스페인 정부가 노동계와 공무원 등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 근로자 임금 5% 삭감,연금 동결,계약직 확대 등 150억유로 규모의 재정긴축안을 내놓은 것은 고육지책인 셈이다.
스페인 경제를 주목하게 되는 것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재정 상태 또한 훨씬 튼튼해 국가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스페인 경제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건설업에의 의존도가 높고,부동산 경기가 침체 국면에 빠져 있으며,저축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이 부실채권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들이 왜 이런 사태를 맞았고,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 등이 교훈과 시사점을 제공할 게 분명한 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수석논설위원
일본의 이코노미스트 쿠마노 히데오는 《버블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는 책을 통해 부동산 붐이 한창이던 시절의 스페인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태양의 축복'을 향유하며 집과 리조트를 끊임없이 지어댔고 건설업은 번성가도를 달렸다. 해외로부터의 주택 구입 자금은 물론 화창한 날씨를 즐기려는 관광객들까지 몰려들어 나라 살림도 순탄하기만 했다.
하지만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상황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해외로부터의 자금유입은 급격히 감소했고,잔뜩 끼었던 부동산 거품도 함께 빠져나갔다. 경제를 떠받쳐온 건설부문이 노동력을 흡수할 수 없게 되자 실업률은 유로권 최악으로 치솟았고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나라 살림 또한 수입은 줄고 재정 지출은 크게 늘어 엉망이 됐다. 쿠마노는 이처럼 급변한 상황을 두고 "스페인 경제가 해외 자금에 농락당했다"고 표현했다. '태양의 축복'이 '태양의 저주'로 돌변한 꼴이다.
사실 스페인의 체면은 요즘 말이 아니다. 유럽발 금융 불안의 도화선이 된 그리스 등과 함께 묶여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낙오자 취급을 당하는 신세다.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최고등급을 유지하던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심지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조성키로 한 7500억유로 규모의 재정안정기금을 최우선적으로 지원받아야 할 나라로 꼽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역시 최고치 대비 20%가량이나 떨어진 부동산가격 급락과 은행권의 부실채권 증가다. 특히 주택 관련 대출이 많은 저축은행들은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 저축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5.3%에 이르렀고 올해 말엔 7.5% 선까지 높아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페인 정부가 최대 저축은행 카하수르를 국유화하는 등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이 나라 경제의 15%를 차지하는 건설업이 회복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미국 등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험한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부동산 경기는 단기간 내엔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0%를 넘는 재정적자를 줄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스페인 정부가 노동계와 공무원 등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 근로자 임금 5% 삭감,연금 동결,계약직 확대 등 150억유로 규모의 재정긴축안을 내놓은 것은 고육지책인 셈이다.
스페인 경제를 주목하게 되는 것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재정 상태 또한 훨씬 튼튼해 국가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스페인 경제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건설업에의 의존도가 높고,부동산 경기가 침체 국면에 빠져 있으며,저축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이 부실채권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들이 왜 이런 사태를 맞았고,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 등이 교훈과 시사점을 제공할 게 분명한 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