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문제를 놓고 정부와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 간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한전 노사가 올해 초 단체협약에서 합의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일정 연령 이후부터 임금을 깎는 제도) 때문이다.

정부는 한전이 정년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발표할 '공기업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에서 한전이 도입하려는 임금피크제를 금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노조는 정부가 간섭할 경우 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갈등의 발단

한전은 지난 2년간의 노사 협상 끝에 올해 1월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한전 직원은 만 56세 되는 해에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아 봉급이 매년 단계적으로 줄어드는 대신 정년을 기존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2년 연장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지 않고 종전대로 만 58세에 은퇴하는 것이다.

문제는 첫번째가 임금총액 등에서 유리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직원이 임금피크제를 선호하고 있다. 한전 노사는 이 제도를 7월1일부터 적용키로 합의했다.

공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재정부는 한전의 임금피크제가 '정년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수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한전식 정년 연장 모델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재정부는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한전식 정년 연장 모델을 저지할 방침이다. 가이드라인은 일종의 지침으로 임금피크제 적용 방식을 훨씬 까다롭게 해 정년 연장 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초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려던 재정부의 계획은 미뤄졌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하면 공기업 반발이 거세지는 등 정치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갈등 전면화되나

재정부는 지방선거가 끝남에 따라 가이드라인 발표 시기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전의 임금피크제 시행 전인 이달 말 내놓을 예정이다.

재정부의 구상은 공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직원별로 업무 능력이나 숙련도에 따라 선별 적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임금총액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능력에 따른 차등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재정부의 취지다. 문제는 한전이 이 같은 가이드라인에 맞추려면 단협 조항을 개정해야 하는데,이미 타결한 단협을 바꾸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한전 입장에선 전 직원을 대상으로 도입키로 했다가 뒤늦게 일부 성과가 높은 직원에게만 선별 적용할 경우 노조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전이 7월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려면 취업규칙 등을 이미 바꿨어야 하는데,회사 측이 정부의 반대로 취업규칙 개정을 미뤄 7월 시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전 노조 측은 반발하고 있다. 한전 노조 관계자는 "자율적 교섭으로 정년 연장 단체협약을 체결한 한전에 임금피크제 표준모델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노사 자율적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7월 시행이 불가능해진다면 정부와 사측을 상대로 소송도 불사할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재정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강제 사항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지침"이라며 "따를지 말지는 해당 공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전 측은 "공기업 평가 시 노사관계가 배점이 가장 높은 만큼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강제 사항이나 마찬가지"라며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