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청색은 쪽빛에서 나왔으나…中 뛰어넘는 한국의 걸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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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의 한국미술 | 안휘준 지음 | 사회평론 | 392쪽 | 2만5000원
화조구자도는 '걸작 중의 걸작'
"한국미술이 靜的이란 건 편견…역동적이고 세련된 작품 많아"
화조구자도는 '걸작 중의 걸작'
"한국미술이 靜的이란 건 편견…역동적이고 세련된 작품 많아"
따뜻한 봄날,꽃나무 아래에서 검둥이,흰둥이,누렁이 세 마리 강아지가 놀고 있다. 누렁이는 게을러서 자고 있고,흰둥이는 개구쟁이라 벌레를 가지고 놀고 있으며,검둥이는 생각이 많아서 사색에 잠겨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세 마리 강아지의 표정도 제각각이다. 꽃나무 위에는 까치 두 마리가 가지에 앉아 꽃을 찾아온 나비와 벌을 희롱한다.
16세기 왕실 출신 화가 이암의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그림)의 풍경이다. 대표적인 미술사학자이자 회화사 전공인 안휘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위원장)는 이 그림을 걸작 중의 걸작으로 친다. 강아지들의 천진난만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털이 있는 강아지를 그리면서도 털을 전혀 그리지 않은 묵법이 독특하고 파격적이라는 것.또 강아지가 주인공이지만 한 쌍의 새와 나비,벌까지 등장시켜 영모화(깃털이 있는 새와 털이 있는 동물의 그림)이자 화조화,초충도로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안 교수는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표현할 때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애용한다. '청출어람'은 《순자》 '권학편'에 나오는 말로 '청색은 쪽빛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靑出於藍靑於藍)'는 뜻.흔히 스승보다 나은 제자를 일컬을 때 쓰지만 안 교수는 한국미술이 중국미술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지만 적잖은 분야에서 한 차원 더 높은 경지까지 발전했다는 뜻에서 이 말을 사용한다.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은 안 교수가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 고른 한국미술의 정수를 담은 책이다. 안 교수는 첫째 창의성 · 예술성 · 작품성 · 수월성(秀越性)이 뚜렷할 것,둘째 한국성 · 독자성이 분명하고 국적 논란이 없는 것,셋째 역사적 가치와 사료성 및 기록성이 높은 것,넷째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분명할 것 등의 선정 기준에 따라 3년여에 걸쳐 작품을 선정했다. 우선 200점가량을 추린 다음 여러 차례 원고를 고치면서 '청출어람'급의 작품 60여점을 골라냈다.
선정된 유물들은 다양하다.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로 종교적 숭고미를 표현해 일본에까지 영향을 줬고 7세기 동아시아 불교 조각을 대표하는 신라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대형이면서도 다양한 도상들의 형태와 비례미가 뛰어난 백제의 금동대향로,단단한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는 데도 균형과 비례,형태가 매우 사실적이어서 불교 조각이 추구하는 이상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통일신라의 석굴암 본존불,중국 도자기에서는 찾기 힘든 독창적 기법으로 기면 전체에 상감 문양을 빽빽이 채워 넣은 고려의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조선시대 산수화,초상화,영모화도 청출어람의 경지에 올랐다. 그 중 천진난만한 강아지들의 개성을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암의 '화조구자도'는 영모화의 압권으로 꼽혔다. 18세기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인 '묘작도(猫鵲圖)'는 두 마리 고양이가 마치 대화하는 듯한 모습을 표현해 고양이 그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도 안견의 '몽유도원도',정선의 '금강전도',윤두서의 '자화상',신윤복의 '미인도'와 '월하정인',동궐도,달항아리 등 조선미대 미술품 20여점이 '청출어람'급의 걸작으로 뽑혔다.
안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미술의 기원을 장르별로 소개하고,일본에 미친 영향까지 설명해준다. 그는 "어느 시대,어느 분야,어느 작가를 막론하고 다 청출어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니지만 청출어람의 경지에 이른 작가와 작품이 많은데도 이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한국미술은 중국미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통념,한국미술이 슬픔으로 가득 차 정적(靜的)이며 소극적이라는 식민사관적 편견에서 벗어나 밝고 아름답고 역동적이며 격조와 세련미를 갖춘 한국미술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16세기 왕실 출신 화가 이암의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그림)의 풍경이다. 대표적인 미술사학자이자 회화사 전공인 안휘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위원장)는 이 그림을 걸작 중의 걸작으로 친다. 강아지들의 천진난만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털이 있는 강아지를 그리면서도 털을 전혀 그리지 않은 묵법이 독특하고 파격적이라는 것.또 강아지가 주인공이지만 한 쌍의 새와 나비,벌까지 등장시켜 영모화(깃털이 있는 새와 털이 있는 동물의 그림)이자 화조화,초충도로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안 교수는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표현할 때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애용한다. '청출어람'은 《순자》 '권학편'에 나오는 말로 '청색은 쪽빛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靑出於藍靑於藍)'는 뜻.흔히 스승보다 나은 제자를 일컬을 때 쓰지만 안 교수는 한국미술이 중국미술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지만 적잖은 분야에서 한 차원 더 높은 경지까지 발전했다는 뜻에서 이 말을 사용한다.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은 안 교수가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 고른 한국미술의 정수를 담은 책이다. 안 교수는 첫째 창의성 · 예술성 · 작품성 · 수월성(秀越性)이 뚜렷할 것,둘째 한국성 · 독자성이 분명하고 국적 논란이 없는 것,셋째 역사적 가치와 사료성 및 기록성이 높은 것,넷째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분명할 것 등의 선정 기준에 따라 3년여에 걸쳐 작품을 선정했다. 우선 200점가량을 추린 다음 여러 차례 원고를 고치면서 '청출어람'급의 작품 60여점을 골라냈다.
선정된 유물들은 다양하다.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로 종교적 숭고미를 표현해 일본에까지 영향을 줬고 7세기 동아시아 불교 조각을 대표하는 신라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대형이면서도 다양한 도상들의 형태와 비례미가 뛰어난 백제의 금동대향로,단단한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는 데도 균형과 비례,형태가 매우 사실적이어서 불교 조각이 추구하는 이상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통일신라의 석굴암 본존불,중국 도자기에서는 찾기 힘든 독창적 기법으로 기면 전체에 상감 문양을 빽빽이 채워 넣은 고려의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조선시대 산수화,초상화,영모화도 청출어람의 경지에 올랐다. 그 중 천진난만한 강아지들의 개성을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암의 '화조구자도'는 영모화의 압권으로 꼽혔다. 18세기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인 '묘작도(猫鵲圖)'는 두 마리 고양이가 마치 대화하는 듯한 모습을 표현해 고양이 그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도 안견의 '몽유도원도',정선의 '금강전도',윤두서의 '자화상',신윤복의 '미인도'와 '월하정인',동궐도,달항아리 등 조선미대 미술품 20여점이 '청출어람'급의 걸작으로 뽑혔다.
안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미술의 기원을 장르별로 소개하고,일본에 미친 영향까지 설명해준다. 그는 "어느 시대,어느 분야,어느 작가를 막론하고 다 청출어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니지만 청출어람의 경지에 이른 작가와 작품이 많은데도 이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한국미술은 중국미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통념,한국미술이 슬픔으로 가득 차 정적(靜的)이며 소극적이라는 식민사관적 편견에서 벗어나 밝고 아름답고 역동적이며 격조와 세련미를 갖춘 한국미술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