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IFRS)을 조기 적용 중인 59개사(2009년 14개,2010년 45개) 중 유형자산 평가 때 '재평가모형'을 선택한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IFRS 도입에 앞서 토지에 대해 자산재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새로운 원가(간주원가)로 정한 회사들이 있지만 이들도 이후에는 모두 원가모형을 선택했다. IFRS가 '공정가치'를 강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IFRS에서는 기업들이 토지 건물 기계장치 등 유형자산을 평가할 때 원가모형과 재평가모형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원가모형은 유형자산을 처음 샀을 때의 원가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다만 IFRS 도입 시 한 번에 한해 공정가치로 자산을 평가할 수 있게 하고 이 가격을 간주원가로 정하고 있다. 재평가모형은 주기적으로 유형자산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방식이다.

원가모형 도입 기업은 재평가모형으로의 전환이 가능하지만,재평가모형을 선택한 뒤 원가모형으로 돌아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변경된 방식으로 산출한 정보가 투자자에게 더 좋은 정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IFRS에서는 공정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평가모형을 도입하면 자산가격의 변동에 따라 재무제표상 숫자들이 함께 널뛸 수 있어 도입을 꺼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재평가모형을 선택하면 3~4년 주기로 자산을 재평가해야 하고, 자산가치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때도 반드시 재평가하게 돼 있어 재무지표의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부담 때문에 IFRS의 본산지인 유럽연합(EU)의 75개 대표회사 중에서도 재평가모형을 채택한 기업은 2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권성수 회계기준원 조사연구실장은 "현재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이점이 있지만 자산가격의 등락에 따라 기업가치도 흔들릴 수 있다는 측면은 부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평가비용도 문제다. IFRS는 토지 건물 기계장치 등과 같은 항목에 속한 자산 중 하나라도 재평가하면 해당 항목에 속한 자산 전부를 재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IFRS를 도입한 듀오백코리아의 김해운 경영지원팀장은 "부채비율이 높지 않고 재무구조도 건전해 굳이 비용이 많이 드는 재평가모형을 선택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밝혔다.

유성신 KT&G 회계부 차장도 "100개가 넘는 사업장을 3~4년마다 평가하려면 비용 부담이 엄청나다"며 "자산가치가 불어나면 배당압력이 커질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