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의 파워대담-게리 로크 美 상무장관] "한국은 성공한 수출국…아이디어 벤치마킹 하고싶다"
미국 워싱턴 백악관 건물 주변에 자리잡은 상무부 건물의 입구 외벽에는 상무부의 존재 이유를 말해주는 명언들이 새겨져 있다. '무역은 폭풍우를 뚫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조지 밴크로프트),'국가 간 통상은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벤저민 프랭클린).그곳에서 게리 로크 상무장관과 김창준 한국경제신문 고문(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대담이 이뤄졌다. 대담 시간은 길지 않았다. 미국 상무장관이란 위치는 바쁘고도 바쁜 자리다. 대담 시간이 끝날 무렵,동석한 두 명의 보좌관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듯 마무리하라고 자꾸 재촉할 정도였다. 지난 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5년 내에 수출을 두 배로 확대하라"는 정책 과제를 부여받았으니 그에게 1분1초는 금과 같을 만도 했다. 로크 장관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미국 건국에 초석을 놓은 중상주의자 프랭클린과 미국 역사학자 밴크로프트가 설파한 핵심이 어김없이 녹아 있었다.

▼아시아계로 워싱턴 주지사를 지낸 데 이어 미국 연방정부의 상무장관 자리에 올랐습니다.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자랑스럽군요.

"나보다 앞서 미국 정치계나 지방정부로 입성하는 길을 닦아 놓은 많은 아시아계 선배들의 덕을 보게 돼 매우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1960년대 초 시카고에서는 중국계 선배가 시 정부 관료로 나가기도 했지요. 나도 다른 아시아계가 미국 정부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영감을 주기 위해 상무장관 업무에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성원해주셔서 영광스럽습니다. "

▼오바마 대통령은 5년 안에 미국의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국가 수출 구상(National Export Initiative)'을 발표했지요.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전 세계 소비자의 95%가 미국 밖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성공하려면 시장이 어디에 있는지,소비자들이 어디 있는지 이해해야만 합니다. 미국 제품과 서비스를 원하는 세계 수요는 굉장히 많은데 다른 선진국 경제와 비교하면 미국은 수출을 너무 적게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수출을 더 늘릴 필요가 있지요. 미국에는 실직자들이 많은데,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는 데 진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제품 생산과 서비스를 늘려 수출할수록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
[김창준의 파워대담-게리 로크 美 상무장관] "한국은 성공한 수출국…아이디어 벤치마킹 하고싶다"
▼국가 수출 구상에 따라 장관께서는 정부 내 '수출진흥내각(Export Promotion Cabinet)'을 이끌고 있습니다. 수출진흥내각 구성은 보기 드문 일인 것 같군요.

"수출을 촉진토록 상무부는 물론 정부 부처가 모두 달라 붙어야 합니다. 주정부,에너지부,수출입은행,중소기업청 등도 동참해야 합니다. 다른 국가들도 모든 정부 부처가 합심해 수출전략을 짜고 있는데,우리도 수출 확대에 성공하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한국 정부도 과거 미국의 수출진흥내각 구성과 비슷한 전략을 전개해 성공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은 훌륭한 품질의 상품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데 성공한 수출국 아닙니까. 우리는 한국을 포함해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출 증진을 위한 최고의 아이디어와 접근 방식,수출전략을 조사해 배울 필요가 있어요. 각국의 여건은 다르나 미국의 상황에 맞게 그런 전략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미국의 모든 부처 장관들이 해외에 나갈 때 세일즈맨이 돼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분명히 그렇습니다. "

▼어떻게 미국이 수출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을까요.

"내가 워싱턴 주지사로 재직할 때 5년 만에 수출을 두 배로 늘린 경험이 있습니다. 연방정부도 가능합니다. 국가 수출 구상은 세 가지가 핵심인데,수출입은행과 중소기업청을 통해 수출기업에 무역금융을 지원하고,또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함께 나서 중소기업들이 해외 바이어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상무부는 80개국에서 바이어와 고객을 전문적으로 발굴하는 무역전문가를 두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수출 대상국의 무역장벽을 허물어 공평한 경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미국은 세계 각국의 기업들에 문호를 활짝 열어놓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미국 기업들도 수출하는 데 제약을 받지 않아야 하며 전 세계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

▼한국의 무역장벽은 구체적으로 뭐라고 봅니까.

"미국 기업들이 직면한 무역장벽이 있기 때문에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한국 측과 완벽한 자유무역협정(FTA)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아주 많이 수입하고 있어요. 우리는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구입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양국 간 무역 확대 잠재력은 아주 크고,양국 소비자들은 더 많은 무역을 통해 보다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미국 행정부가 언제 의회에 한 · 미 FTA 비준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예상합니까.

"커크 대표의 업무 소관이지요. 최근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

▼한국 측은 무역장벽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은 추가 요구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는데….

"FTA 내용 가운데 몇 가지 현안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커크 대표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FTA는 조지 W 부시 전 정부와 한국의 전 정부(노무현 정부)가 체결했습니다. 무역장벽이 없다면 새로운 FTA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무역장벽 제거는 유독 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멕시코 중국 베트남 등 전 세계 다른 국가들에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 주십시오."

▼한 · 미 간 자동차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미국이 한국에 수출하는 것보다 한국은 더 많이 미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FTA(new FTA)'를 희망하고 있지요. 무역 불균형을 해소한다면 미국 기업들이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한국에 더 많이 수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미국상공회의소는 미국이 한 · 미 FTA를 조속히 비준하지 않을 경우 35만개의 일자리 창출 기회를 잃을 것이라고 추정했는데요.

"그 숫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요. 오바마 대통령과 커크 대표,그리고 나는 한 · 미 FTA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유럽연합(EU)과 FTA를 잠정적으로 체결한 것을 압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과 미국은 (쟁점이 되는 현안에) 결론을 내고 미국 의회가 FTA를 비준하는 일이 매우 시급한 것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 수출이 증가할수록 미국인들의 일자리도 더욱 늘어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중국의 위안화 가치 재평가(절상)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 입장은 명확합니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여러 차례 밝혔으며 오바마 대통령도 얘기했습니다. 중국도 그들의 통화를 리밸런싱(위안화 가치 절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

▼중국이 리밸런싱할 가능성이 있나요.

"언제 리밸런싱할 수 있을지는 가이트너 장관에게 문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왔으며 최근에는 미 · 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으니까요. "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시장을 추가로 개방해야 한다고 봅니까.

"톰 빌색 농무장관에게 물어본다면 쇠고기 수입 시장에 다른 제한을 둘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집 식구는 미국 쇠고기를 항상 즐겨 먹습니다. 전 세계인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미국이 더 많은 쇠고기와 농산물을 수출한다면 미국 농업계는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도 혜택이 될 것입니다. "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습니까.

"한국에는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한국은 갈 때마다 흥분되고 다이내믹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

정리=김홍열 워싱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美 최초 중국계 주지사 거쳐 장관까지

게리 로크 미국 상무장관(60)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롤 모델'이다. 중국계 이민 3세인 그는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대 법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땄다. 198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96년 21대 워싱턴 주지사로 선출됐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중국계 주지사였다.

2003년 7월 그는 갑자기 3선을 위한 주지사 출마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워싱턴주를 너무 사랑하지만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6년 뒤인 2009년 2월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상무장관에 지명했다. 역시 첫 중국계 상무장관 타이틀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