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물결 헤쳐 갈 때 꼭 올 것이니,돛을 높이 달고 넓은 바다 건너리(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 2006년 4월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보잉사 초청 오찬에서 인용한 이백의 '행로난(行路難)'이란 시다. 무역 불균형,위안화 절상 등 여러 현안이 있지만 미 · 중 관계는 변함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다음날 조지 W 부시 대통령 주최 백악관 만찬에서도 후 주석은 두보의 '망악(望嶽)'이란 시를 읊었다. '반드시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의 작은 모습을 보리라(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두 나라 사이의 이견은 큰 시각에선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중국 정치인들의 한시 사랑은 유별나다. 외교석상에서 한두 구절을 인용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것은 물론 '품격 있게'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이 같은 습성을 잘 알던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06년 1월 중국 쓰촨성에서 열린 '국제 이백 문화여유절'축하 메시지로 이백의 '증왕륜(贈汪倫)'이란 시를 보냈다. '도화담 물 깊이가 천 척이나 되지만 나를 보내는 왕륜의 정에는 미치지 못하리(桃花潭水深千尺,不及汪倫送我情).'프랑스와 중국의 관계가 그 만큼 깊다는 것을 문화예술의 나라 대통령답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추이텐카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최근 방중한 천영우 외교통상부 2차관에게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유후론(留侯論)' 구절을 자필로 쓴 액자를 선물한 데 대해 말들이 많다. 내용은 이렇다. '천하에 큰 용기 있는 자는 갑자기 일을 당해도 놀라지 않으며,까닭없이 해를 입어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의 마음에 품은 바가 크고 뜻이 원대하기 때문이다(天下有大勇者,卒然臨之而不驚,無故加之而不怒. 此其所挾持者甚大,而其志甚遠也)'.

그럴싸해 보이지만 천 차관이 천안함 사건의 안보리 처리와 관련해 협조 요청차 방중했다는 시점이 문제다. 당사자는 오랜 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으나 '한국의 분노가 크겠지만,화내지 말고 자제하기 바란다'는 중국의 의중을 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공개해도 중국은 평정심과 절제만을 되뇌고 있다. 대국답지 못한 처사라는 국제사회의 눈총에도 요지부동이다. 중국이 알아듣게 하려면 어떤 시를 보내야 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