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큐레이터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팔만대장경 1000년 축전 기획하느라 정신 없어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성철스님 수행하던 백련암에 가 봤죠…25개 암자 활용 멋진 프로젝트 기대
9월 열리는 '미디어시티 서울' 총감독, 밀란 쿤데라의 '느림'에서 많은 영감
9월 열리는 '미디어시티 서울' 총감독, 밀란 쿤데라의 '느림'에서 많은 영감
정독도서관이 마주 보이는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1층 전시실 한가운데에 아홉 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영상설치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다. "만다라를 모티브로 한 김범씨의 '꽃'이라는 작품이에요. 가운데 모니터에 회전하는 만화경 속으로 자와 각도기가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죠.이걸 둘러싼 여덟개의 모니터에는 기차에서 내려다보는 창 밖 풍경이 펼쳐집니다. "
복합문화공간 아트선재센터를 이끌고 있는 독립큐레이터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45).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표정 위로 빛과 시간의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그는 1993년 15만여명이 몰린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전시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2006년 이후 매년 예술 프로젝트 '플랫폼'을 기획하면서 한국 미술계를 이끌고 있다. 오는 9월7일부터 11월17일까지 열리는 '미디어시티 서울 2010'의 전시총감독까지 맡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과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의 외동딸이기도 하다.
"이번 '미디어시티 서울'의 주제가 '신뢰(Trust)'인데 그 시발점은 작가 김영하씨의 '빛의 제국'이었어요. 전시 주제도 이걸로 하고 싶었지만 결국 못했죠.다행히 김영하씨가 도록에 글을 써 주기로 했어요. 단편소설 네 편을 쓰는데 지금 두 편 쓰셨대요. "
전시 도록에 단편소설을 싣기로 하고 또 쓰는 작가가 있다니.그는 레바논 작가 잘랄 투픽도 하나 쓴다고 덧붙였다. 예전에 밀란 쿤데라의 '느림'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쿤데라 소설에 에피소드가 하나 나오는데 시간을 바라보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 얘기요. 어떤 왕이 화가한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3년 동안 머물 집이랑 먹을 거랑 다 달라고 해서 3년이 흘렀는데 이제 그림 다 됐냐고 그랬더니 아직 안됐다고,또 3년씩 해서 9년을 해줬더니 그 자리에 앉아서 금방 그림을 그렸대요. 서양 사람은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데 동양 사람은 그 반대로… 시간 개념이 다르잖아요. "
그는 시간과 사랑에 대한 쿤데라의 얘기도 곁들였다. 마차를 타고 오랫동안 가면서 함께 부딪치고 그렇게 사랑이 천천히 익어가는데 요즘은 빠른 차를 타고 가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
그러고 보니 이곳에 전시 중인 김범씨의 작품 중에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이 있다. 12시간짜리 비디오 영상이 돌에 정지용의 시를 읽어주고 설명하는 작품이다. 국어 강사와 일본어를 번역해 읽어주는 사람 등이 돌에 시를 가르친다는 발상이 놀랍다. 이처럼 예술가들에게 시간은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고 물성의 경계까지 넘나든다.
"모든 전시가 다 생활에서 나오잖아요. 살아가면서 느낀 일,같은 시공간에서 나온 추억….자놋 슈와르크 감독의 '사랑의 은하수(Somewhere in Time)'도 그런 영화죠.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과거로 여행을 가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호주머니 속에 있던 현재 물건 때문에 다시 돌아와 그 여자를 그리워하는 그런 내용처럼요. "
그래서 그는 "지금 이게 뭔가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이걸 이렇게 했을 때 다르게 했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미디어 시티 서울에 나오는 작품 얘기를 꺼냈다. 그 중에서 던컨 스피크먼(Duncan Speakman)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관심을 끈다. "MP3에 다운을 받아 작가가 지시하는 대로 음악을 들으면서 어느 공간으로 가서 같이 체험하는,각자의 MP3와 휴대폰을 이용하는 작업인데 굉장히 흥미로워요. 전시장뿐 아니라 야외에 나가는 작업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조덕현 선생님은 이화여고 안에 심슨관이라고 유관순이 다녔던 곳,박물관처럼 돼 있는데 원래 있던 물건이랑 학생이 바꿔놓는 물건이랑 같이 보여주는 그런 작품도 있어요. "
준비 중인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얘기도 이 즈음에서 나왔다. "내년 9월께 해인사에서 대규모 기념전을 열 계획입니다. 어쩌다가 저한테 연락이 왔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다 못 세웠죠.두 번이나 현장을 다녀왔는데 좀 더 있어야 윤곽이 드러나겠지요. 처음 연락이 왔을 때 놀랐어요. 게다가 주지 스님이 해인사에 딸린 25개 암자를 다 활용해서라도 멋진 프로젝트를 완성해 달라고 하더군요. "
그는 "성철 스님이 수행하던 백련암에도 가 봤다"며 "기대가 큰 만큼 내실 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전시회가 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해인사에는 참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예요. 절에 대한 역사,불교 역사 등을 공부하고 풀어내야 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보여줘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
아트선재센터의 정원에는 고 박이소의 돌책상 작품이 있고 최정화씨가 만든 담장 작품도 그대로 있다. 이들은 모두 김씨와 함께 작업을 기획하고 땀 흘리며 새로운 예술세계를 열었던 이곳의 중심 멤버였다.
그는 "지금 전시 중인 김범씨 작품은 곧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8월에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였던 양혜규씨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두 작가 모두 오랫동안 기획하고 준비한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김홍석,백승우,박이소의 전시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 예정이다. 그에게 큐레이팅이란 뭘까. "저는 그래요. 책을 쓰는 거나 그걸 전시로 만들어 사람들과 공유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같이 얘기하고 나누는 것.큐레이팅이란 책과 같고 영화와 같고,그런 점에서 인생과 같다고 할까요. "
아늑한 정원과 한옥 건물이 남아 있는 도심의 문화공간.너무 바빠 매일 쫓기듯 뛰어다니는 그도 혼자 좋아하는 장소는 따로 있을 법하다. "저요? 집에 있을 때가 가장 좋아요. 집에 있을 때 아늑하고 행복하고 편안하지 않으세요? 전 그렇던데…."
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복합문화공간 아트선재센터를 이끌고 있는 독립큐레이터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45).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표정 위로 빛과 시간의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그는 1993년 15만여명이 몰린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전시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2006년 이후 매년 예술 프로젝트 '플랫폼'을 기획하면서 한국 미술계를 이끌고 있다. 오는 9월7일부터 11월17일까지 열리는 '미디어시티 서울 2010'의 전시총감독까지 맡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과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의 외동딸이기도 하다.
"이번 '미디어시티 서울'의 주제가 '신뢰(Trust)'인데 그 시발점은 작가 김영하씨의 '빛의 제국'이었어요. 전시 주제도 이걸로 하고 싶었지만 결국 못했죠.다행히 김영하씨가 도록에 글을 써 주기로 했어요. 단편소설 네 편을 쓰는데 지금 두 편 쓰셨대요. "
전시 도록에 단편소설을 싣기로 하고 또 쓰는 작가가 있다니.그는 레바논 작가 잘랄 투픽도 하나 쓴다고 덧붙였다. 예전에 밀란 쿤데라의 '느림'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쿤데라 소설에 에피소드가 하나 나오는데 시간을 바라보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 얘기요. 어떤 왕이 화가한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3년 동안 머물 집이랑 먹을 거랑 다 달라고 해서 3년이 흘렀는데 이제 그림 다 됐냐고 그랬더니 아직 안됐다고,또 3년씩 해서 9년을 해줬더니 그 자리에 앉아서 금방 그림을 그렸대요. 서양 사람은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데 동양 사람은 그 반대로… 시간 개념이 다르잖아요. "
그는 시간과 사랑에 대한 쿤데라의 얘기도 곁들였다. 마차를 타고 오랫동안 가면서 함께 부딪치고 그렇게 사랑이 천천히 익어가는데 요즘은 빠른 차를 타고 가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
그러고 보니 이곳에 전시 중인 김범씨의 작품 중에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이 있다. 12시간짜리 비디오 영상이 돌에 정지용의 시를 읽어주고 설명하는 작품이다. 국어 강사와 일본어를 번역해 읽어주는 사람 등이 돌에 시를 가르친다는 발상이 놀랍다. 이처럼 예술가들에게 시간은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고 물성의 경계까지 넘나든다.
"모든 전시가 다 생활에서 나오잖아요. 살아가면서 느낀 일,같은 시공간에서 나온 추억….자놋 슈와르크 감독의 '사랑의 은하수(Somewhere in Time)'도 그런 영화죠.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과거로 여행을 가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호주머니 속에 있던 현재 물건 때문에 다시 돌아와 그 여자를 그리워하는 그런 내용처럼요. "
그래서 그는 "지금 이게 뭔가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이걸 이렇게 했을 때 다르게 했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미디어 시티 서울에 나오는 작품 얘기를 꺼냈다. 그 중에서 던컨 스피크먼(Duncan Speakman)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관심을 끈다. "MP3에 다운을 받아 작가가 지시하는 대로 음악을 들으면서 어느 공간으로 가서 같이 체험하는,각자의 MP3와 휴대폰을 이용하는 작업인데 굉장히 흥미로워요. 전시장뿐 아니라 야외에 나가는 작업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조덕현 선생님은 이화여고 안에 심슨관이라고 유관순이 다녔던 곳,박물관처럼 돼 있는데 원래 있던 물건이랑 학생이 바꿔놓는 물건이랑 같이 보여주는 그런 작품도 있어요. "
준비 중인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얘기도 이 즈음에서 나왔다. "내년 9월께 해인사에서 대규모 기념전을 열 계획입니다. 어쩌다가 저한테 연락이 왔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다 못 세웠죠.두 번이나 현장을 다녀왔는데 좀 더 있어야 윤곽이 드러나겠지요. 처음 연락이 왔을 때 놀랐어요. 게다가 주지 스님이 해인사에 딸린 25개 암자를 다 활용해서라도 멋진 프로젝트를 완성해 달라고 하더군요. "
그는 "성철 스님이 수행하던 백련암에도 가 봤다"며 "기대가 큰 만큼 내실 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전시회가 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해인사에는 참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예요. 절에 대한 역사,불교 역사 등을 공부하고 풀어내야 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보여줘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
아트선재센터의 정원에는 고 박이소의 돌책상 작품이 있고 최정화씨가 만든 담장 작품도 그대로 있다. 이들은 모두 김씨와 함께 작업을 기획하고 땀 흘리며 새로운 예술세계를 열었던 이곳의 중심 멤버였다.
그는 "지금 전시 중인 김범씨 작품은 곧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8월에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였던 양혜규씨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두 작가 모두 오랫동안 기획하고 준비한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김홍석,백승우,박이소의 전시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 예정이다. 그에게 큐레이팅이란 뭘까. "저는 그래요. 책을 쓰는 거나 그걸 전시로 만들어 사람들과 공유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같이 얘기하고 나누는 것.큐레이팅이란 책과 같고 영화와 같고,그런 점에서 인생과 같다고 할까요. "
아늑한 정원과 한옥 건물이 남아 있는 도심의 문화공간.너무 바빠 매일 쫓기듯 뛰어다니는 그도 혼자 좋아하는 장소는 따로 있을 법하다. "저요? 집에 있을 때가 가장 좋아요. 집에 있을 때 아늑하고 행복하고 편안하지 않으세요? 전 그렇던데…."
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