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생산된 600만달러어치의 계절독감(플루) 예방백신을 가득 실은 전세항공기 한 대가 지난 8일 인천공항에서 남미 콜롬비아를 향해 이륙했다. 국산 독감백신이 해외로 처음 수출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매년 1000만명분 이상의 독감백신 전량을 일본,호주 등에서 수입해왔다. 독감백신은 항체 지속기간이 보통 1년 정도이고 매년 유행하는 독감바이러스가 바뀌는 특성상 예방백신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이 사용되지만 국내에선 생산하지 못했다.

백신과 같은 생물학적제제는 합성의약품에 비해 제조공정 및 생산시설을 갖추고 관리하기가 몹시 까다로운 데다 개발과 생산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자금이 들어간다. 더구나 백신은 수요 예측도 어려워 제약회사들이 개발에 나서길 주저하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인 만큼 백신 제조는 고위험 · 고수익 비즈니스 사업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백신 생산이 가능한 국가와 제조사가 한정된 공급자 위주의 블루오션 시장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 세계에서 세 번째로 B형 간염백신을 개발했던 녹십자는 1980년대 중반부터 독감백신 국산화를 모색해왔다. 최근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조류독감과 계절독감백신의 국산화에 대한 정부 지원에 힘입어 화순공장에서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독감백신은 물론 신종플루 백신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독감백신 자체 개발로 국내 공급을 해결한 것은 물론 외화를 벌고,신종플루 팬데믹 걱정까지 덜게 됐으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올린 셈이다. 자국에서 필요한 백신을 만들 줄 아는 나라가 의약품 선진국으로 평가받는다. 지난번 신종플루 대유행 때처럼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면 백신 품귀사태가 나타나 수입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백신 수출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우리나라 독자기술로 만든 지 1년이 채 안 되는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임상시험,제조과정 등을 신뢰하고 주문했다는 점에서 국내 제약산업의 새로운 이정표로 삼을 만하다. 최근 산업환경이 매우 어려운 국내 제약산업이 스스로 보다 노력하고 정부의 지원이 집중된다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이인재 녹십자 상무/독감백신 생산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