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이 침체되자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거세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대출 규제를 풀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DTI를 완화할 경우 어느 정도 거래 활성화가 기대되지만 대출 규제는 부동산 정책이라기보다는 가계와 금융권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DTI 규제가 강화된 이후 주택담보대출이 위축돼 부동산 시장에 자금 유입이 억제된 것은 사실이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DTI 규제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한 지난해 9월부터 급격히 둔화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는 주택담보대출이 월 평균 2조6000억원 증가했지만 9월부터 12월까지는 월 평균 증가액이 1조1500억원에 불과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폭 축소는 올 들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5월 말 기준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70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조6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이 11조2000억원 늘어난 것에 비하면 증가액이 절반에 그친다. 주택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앞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수요자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것도 주택담보대출이 위축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은행권에 대한 DTI 규제 이후 상호저축은행 등의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DTI 적용 대상을 제2금융권으로 확대한 지난해 10월부터는 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도 꺾였다.

DTI 완화 시 주택 거래 활성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가계부채 수준을 고려하면 규제 완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0년 0.76에서 지난해 1.43으로 9년 만에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가격 거품 붕괴를 겪은 미국(1.28)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DTI 규제가 주택시장 침체의 주 원인은 아니다"라며 "최근의 가격 하락은 시장 원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정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