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브랜드로 외국계 전문점 맞서는 '커피 남매'
어릴 적 여동생은 종종 오빠에게 딱지를 접어줬고 오빠는 밖에 나가 딱지치기로 동네의 딱지를 죄다 긁어왔다. 어느날 오빠가 딱지를 다 잃고오자 여동생은 오빠의 딱지를 쓸어간 친구에게 따귀를 날리고는 집 장롱 속에 한참 숨어 있었다.

오빠는 동생이 중학교 1학년 때 맹장수술을 받자 혹시 큰일 나는 것 아닌지 걱정한 나머지 방과 후 매일 1시간씩 걸어 병문안을 갔다. 어머니가 사업가였던 까닭인지 2층짜리 집에 '벤츠'가 들락거리다 한순간 가구 등에 가압류 딱지가 붙는 것은 예사였다. 이러다 보니 남매는 창업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랐다.

김도균 탐앤탐스커피 사장(41)과 김은희 커핀그루나루 사장(39) 얘기다. 이처럼 사이가 좋았던 오누이는 지금 커피 업계에서 동반자이자 경쟁자가 됐다. 오빠는 "힘들 때마다 서로에게 위안을 얻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고 강조했다. 여동생도 "주요 상권에선 양 매장 간 거리가 고작 50~200m에 불과할 정도로 스타벅스 못지 않은 상대"라며 "아이디어도 비밀리에 진행하고 목 좋은 매장이 나오면 같이 입찰 경쟁에 나선다"고 말했다.

김은희 사장이 2007년 말 '독립'하기 전까지 둘은 탐앤탐스에서 같이 일했다. 김도균 사장은 전공(건축학)과 관련된 부동산 시행업무와 인테리어 회사를 거쳐 2001년 탐앤탐스 1호점을 열었고 지난해 154개 매장으로 매출 650억원을 거뒀다. 싱가포르 호주 태국에도 진출했다. 김은희 사장은 대기업을 그만둔 후 원두 도 · 소매업을 하다 2003년부터 5년간 오빠 일을 도왔다. 현재는 커핀그루나루 35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4~5년 전 회사에 빚이 많아 매장에 '빨간 딱지'(가압류)가 붙고 은둔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이때 동생이 구조조정부터 시작해 직원교육 점포개발 발주 등을 모두 해냈지요. 미안하면서도 고맙습니다. "(김도균)

"오빠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 경험 덕에 제 사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회사에서 '최후의 보루'가 되고 나니 오빠의 고독을 알 것 같네요. "(김은희)

김은희 사장은 "어느 순간 내가 (탐앤탐스의) '머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독립을 결심했고 오빠에게 통보하기까진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 듣고 김도균 사장은 "당시 '탐앤탐스가 좋은 상권에 매장을 여러 개 내고 싶어서 새 브랜드를 냈다'는 소문이 돌아 남매라는 걸 숨기기도 했다"며 웃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가. 이들의 공통점은 차별화된 사이드메뉴를 고안한 것.김도균 사장은 "2004년 매장에서 굽는 프레즐(길게 뽑은 밀가루 반죽을 매듭 모양으로 꼬아 구운 담백한 빵)을 내놨을 땐 초기 1~2년은 하루에 고작 3~4개씩 팔았지만 지금은 약 30개가 팔리면서 탐앤탐스만의 이미지로 정착됐다"고 말했다. 김은희 사장은 "타 브랜드 객단가가 7000원인 반면 브레드와 샐러드 등을 판매하는 우리의 경우 9000원"이라며 "한국인 입맛에 맞춰 달콤한 맛과 탄산을 강조한 와인을 더했고 와인부스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와인 매출은 현재 5% 미만이지만 매일 와서 '로제스파클링 와인'을 2잔씩 마시고 가는 손님도 있단다.

탐앤탐스는 올해 250개까지 매장을 내고 미국 중국 아르메니아 등에 진출할 계획이다. 국내 최대인 400㎏ 로스팅 기계를 제작 중이고,직접 개발한 프레즐 전용 오븐을 해외에 수출할 예정이다. 커핀그루나루는 원래 목표였던 50호점을 상반기에 조기 달성하고 80개까지 매장을 확대한다는 목표다. 또 1~2년 내 새로운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내놓는다. 두 사람은 "외국계 커피전문점들이 규모나 브랜드 인지도에선 앞서지만 국내 업체들은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와 소비자 입맛에 탄력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 경쟁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