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수주 가뭄에 시달렸던 조선업계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의 수주 실적은 작년 동기 대비 10배가량 급증했다. 물론 지난해 상반기 실적이 바닥 수준인데 따른 '기저효과'도 배제할 수 없지만,조선 시황이 가시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하반기에도 대규모 선박 발주가 예고돼 있어 조선 업계가 불황의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 나온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온다.

◆선박 수주 상반기 '선방'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은 최근 굵직한 수주를 잇달아 성사시키며 불황의 그늘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동안 수주 실적이 없었던 현대중공업은 올해 부유식 원유일괄생산저장시설(FPSO),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초대형 유조선,벌크선,자동차 운반선 등 45척을 수주했다. 금액으로는 70억달러로 올해 연간 수주 목표액(120억달러)의 절반을 넘어선 규모다. 16일엔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16억달러 규모의 가스복합 화력발전소 건설 공사를 따내며 플랜트 부문의 수주도 확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이달 초 그리스 선박박람회에서 15만8000t급 유조선 5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따내면서 수주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LNG 운반선,LNG-FPSO,유조선 등 총 29척을 33억달러에 수주했다. 작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5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최근 수주한 선박들의 선가는 올초 대비 10%가량 높아졌다"며 "수주량과 선가가 함께 회복세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벌크선,해양플랜트 설치선 등에 대한 건조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10배 증가한 30억달러(24척)를 수주했다. 남상태 대우조선 사장은 최근 2주간 유럽과 남미 등을 돌며 10억달러에 달하는 수주를 직접 따내기도 했다. STX조선해양도 올 상반기에만 23척(9억1000만달러)을 새로 확보했다. STX유럽 등 해외 물량까지 합하면 32척(24억6000만달러) 규모다.

◆당분간 수주행진 지속될 듯

조선업계는 하반기에도 유조선,벌크선,LNG 운반선 등을 중심으로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중동,아프리카 등에서 나올 해양 플랜트와 대형 벌크선,유조선 등 상선을 추가 수주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은 대만 에버그린사가 발주할 10여척의 컨테이너선 건조 계약 입찰에 참여했으며 유조선 6척을 추가 수주할 수 있을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은 유럽 선주사로부터 대형 유조선 8척을 6억달러에 수주하기 위한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빠르면 이달 안에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인 소난골사로부터 15억달러 규모의 FPSO를 수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협상이 잘 진행되면 이달에만 40억달러에 가까운 수주 실적을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특히 중국 정부가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위안화 절상 움직임을 보이면서,앞으로 중국 조선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에서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체들은 품질과 기술 부문에서 앞서 있기 때문에 가격 면에서 반사이익을 볼 경우 수주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중론도 만만치 않아

수주량 증가와 선가 상승 등에 따라 조선 시황이 바닥을 치고 회복세에 진입했다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아직 낙관론을 펼치기엔 다소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남유럽발 경제 위기 가능성이 남아 있는 데다 미국,유럽,중동 등의 주요 선주들이 예전처럼 대대적인 발주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선사들의 선박 건조 계약 취소와 인도 연기 요청 가능성이 잠복해 있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선박 수주 부진으로 인한 중 · 장기 차입금 부담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점도 숙제로 남아 있다. 2008년 말까지만 해도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해온 국내 대형 조선회사들의 빚(총차입금)이 크게 불어나 회사별로 최대 3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성기종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에도 유조선,벌크선 등의 상선 발주가 이어질 전망"이라며 "다만 아직도 배가 고픈 대형 조선업체들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견 조선사들의 수주 목표를 채워줄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