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가족부가 2008년 국내 보건의료 실태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는 횟수는 11.8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횟수보다 5회 많았다. 이처럼 우리나라 국민의 의료기관 접근성은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조금만 몸이 좋지 않아도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인프라가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치료를 받고 싶어도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비뇨기과다.

◆조루증 진료 꺼리면 안돼

대한남성과학회(회장 박광성 · 전남대병원 비뇨기과 교수)가 2009년 아시아지역 남성 4997명을 대상으로 한 '조루 유병률 및 태도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20%는 비뇨기과 의사와의 상의를 매우 불편해 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필리핀 17%,태국 13%,홍콩 · 말레이시아 4%,인도네시아 0%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이는 성기능 장애를 창피한 것으로 생각하고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박광성 대한남성과학회장은 "부끄럽다고 치료를 받지 않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글에 의존하면 자칫 병을 키우거나 잘못된 치료법으로 부작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며 "비뇨기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로 중년 남성에게 발생하는 발기부전과 달리 조루증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든 남성에게 흔히 일어나는 질환이다. 대한남성과학회에서 2008년 8월 국내 성인 남성 2037명을 대상으로 한 조루 유병률 관련 역학조사 결과 전체의 27.3%(560명)에 해당하는 남성이 자신 스스로를 조루라 여기고 있었다. 한국 남성의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그러나 성기능 장애에 대해 논의를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루증으로 고통받는 남성들의 병원으로 향하는 문턱을 높이고 있다.

◆삽입 후 2~3분 내 사정,조루 의심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조루증을 남성이 수의적 사정 조절이 부족해 스스로 원하기도 전에 클라이맥스에 도달해 사정해 버리는 증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성의학에서는 보통 질내 삽입 후 2~3분 이내 사정하는 경우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조루증의 진단을 위해서는 △질 내 삽입 후 사정까지 자가 시간 측정 △사정 조절 여부 △성교의 만족도,불편함(고통) 수반 여부 등에 대한 자가보고가 중요하다. 최근 신체적 증상뿐 아니라 개인 생활 및 파트너와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 정서적인 부분이 중요시되면서 조루증의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되는 경우를 조루증으로 판정한다. 조루증은 가장 흔한 남성 성기능 장애임에도 적절한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민간요법이나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의존해 왔다. △성관계 갖기 전 자위행위하기 △술 마시고 성관계 갖기 △귀두를 칫솔로 문지르기 △콘돔을 여러 장 사용하기 △성관계시 다양한 체위로 변경하기 △찬물로 샤워한 뒤 성관계하기 △숨을 깊이 쉬기 등이 사정을 지연시킨다고 알려진 성지식과 민간요법들이다. 이런 속설에 가까운 민간요법들은 정확한 출처가 없는 만큼 실제 효과를 확인할 수 없다. 오히려 성기에 가한 강한 자극으로 피부가 벗겨지거나 상처가 생길 수 있으며 이를 통한 세균 감염으로 이차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성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꾼 프릴리지

조루증은 1950년대 이전만 해도 신경과나 정신과적인 요소와 연결시켜 생각했고 그 후에도 행동 학습 문제거나 버릇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피임약과 발기부전이 약물로 치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면서 성기능 장애 문제 대부분을 정신과의 문제가 아닌 기질적 원인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학적 접근이 시작됐다. 1990년대 이후 중추 내 신경전달물질이 조루증 치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기질적인 원인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프릴리지는 성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꾼 연구의 산물이다. 프릴리지 등장 후 부끄러운 증상으로 치부되던 조루증에 대한 논의와 해법이 양지로 나오게 됐다. 1967명의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BMK마켓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프릴리지 발매 후 비뇨기과에 방문하는 20~30대 젊은 남성환자의 비율이 25.4%에서 39.8%로 급증했다. 신촌 임일성 비뇨기과 원장은 "최근 들어 젊은 부부들이 성 기능 장애에 대한 상담을 위해 비뇨기과를 같이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프릴리지는 젊은 남성들도 비뇨기과에 가서 성기능 문제를 상담하게 하는 자리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배우자와 함께 비뇨기과에 방문하는 새로운 진료 문화도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예비 신랑들이 비뇨기과에서 불임 검사뿐만 아니라 조루증,발기 부전 등 성기능 장애 검진을 받는 것이 웨딩 전 필수 관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행복하고 건강한 결혼 생활과 자녀 계획을 위해서는 신부뿐만 아니라 신랑의 검진 또한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충치가 생기면 치과에 가고,눈이 아프면 안과에 가는 것이 당연하듯 프릴리지의 등장으로 조루증과 같은 성기능 장애 치료를 위해 비뇨기과 진료를 받는 올바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