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재정적자에 고삐를 조여야 할 시급성에 대해 미국 의회 의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다해도 별로 빠른 게 아니다. 미국이 얼마든지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지난 18개월 동안 미국의 공공부채는 5조5000억달러에서 8조6000억달러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전형적인 재정 과잉지출의 징후인 인플레이션이나 장기금리 상승은 상당히 억제돼 왔다. 이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매우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안일함'을 키우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이 차분한 이유는 명백하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예상치 못했던 파산으로 야기된 금융위기는 글로벌 수요를 붕괴시켰고,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낳았다. 민간의 금융수요가 위축되면서 민간저축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공공부채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잔잔한 수면 밑에는 좋지 않은 징조들이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미국 정부의 자금조달 능력과 공공부채 수준 사이에는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큰 격차가 있었다. 그러나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이 격차가 급격히 좁아졌다. 미국의 공공부채는 2008년 9월 국내총생산(GDP)의 38%에서 59%까지 치솟았다. 지금의 금리수준에서 미국 재무부가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맘껏 빌릴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미국 정부는 부채를 갚기 위해서 얼마든지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다. 따라서 미 국채는 부도가 날 신용위험(credit risk)은 없다. 그러나 미 국채도 금리위험(interest rate risk)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재무부가 하룻밤 새 순국채 발행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고 가정해보자.새로 발행된 국채는 부도가 날 위험은 없지만,훨씬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할 것이다.

최근 재정적자가 급증하면서 10년만기 스와프금리와 10년만기 미 국채 수익률 간 차이(스와프 스프레드)는 2008년 9월 77bp(1bp=0.01%)에서 올해 3월 전례 없이 낮은 수준인 -13bp까지 떨어졌다. 이는 투자자들이 미 국채에 대해 같은 만기의 민간 스와프금리보다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는 의미다. (민간 스와프금리는 은행이나 기업이 특정기간 변동금리에 기반한 일련의 현금흐름을 교환할 때 지급하는 고정금리를 뜻한다. )

2000년 미국이 흑자 재정의 행복감에 빠져 있을 때 미 행정관리예산국(OMB)과 의회예산처(CBO),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미 재무부가 발행하는 단기국채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2000년 10월 10년만기 스와프 스프레드는 기록적인 130bp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재정흑자가 사라지고 적자폭이 확대되면서 스와프 스프레드는 점차 하락했고,급기야 지난 3월엔 마이너스가 됐다. 이후 유럽 재정문제가 불거지고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살아나면서 스와프 스프레드는 다시 플러스로 돌아섰다. 10년만기 스와프 스프레드는 미 재무부의 자금조달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용수단으로 부상했다. 일종의 '탄광 속의 카나리아'인 셈이다.

낮은 수준의 장기금리가 향후 몇 달 동안,아니 내년까지도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장기금리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오를 수도 있다. 일례로 1979년 10월 초와 1980년 2월 말 사이에 10년만기 국채수익률은 거의 4%포인트나 치솟았다.

현재 정부 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지출계획을 막지 못해서다. 미 의회가 지난 1년 반 동안 신규 재정지출 프로그램에 수천억달러를 책정했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에 10억~20억달러를 추가 배정하길 거부하는 게 쉽지 않다. 연방정부는 향후 30년 동안 실제론 지키기 힘든 의무를 떠안고 있다.

미국은 이런 재정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베이비붐 이후 세대는 규모가 크지 않다. 또 과거에 비춰볼 때 시간당 생산량이 연간 3% 이상 지속적으로 늘어나기 어렵다. 느리게 증가하는 노동력과 제한된 생산성 향상 속도는 이미 존재하는 의무를 이행하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자원을 제공할 수 없게 만든다. 정치적으로는 '독성을 가진' 재정지출 감소와 공공의료제도의 합리화,의료혜택 및 연금수령 연령 상향조정이나 상당폭의 물가상승만이 적자를 메울 수 있다. 경제성장의 기반을 무너뜨려 궁극적으로 세수 확충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세금인상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미 달러화가 주요 명목화폐 가운데 가장 타격을 적게 입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위안이 되지 못한다. 금값의 거침 없는 상승은 투자자들이 명목화폐 이상의 안전자산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구조적인 재정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점진적인 변화는 부적합하다.

재정긴축이 새로운 경제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현재의 재정지출 탄력은 매우 강해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어떤 재정지출 축소도 새로운 디플레이션 압력을 초래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국채 발행량을 줄일 경우 민간 자본시장의 압박이 완화될 것이다.

다행히 재정위기가 심각해지고 그리스와 상황이 점점 닮아가면서 진지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대응책들은 장기적인 미국 예산전망(특히 노인의료보험제도)의 오차범위가 매우 넓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재정위기가 급격히 악화되는 순간을 과소평가할 경우 미국 경제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긴축'에 맞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