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흑색과 백색의 바둑돌,그리고 가로 세로 19개의 선으로 이뤄진 작은 바둑판에서 이뤄지는 게임이다. 하지만 바둑에는 우주의 이치가 담겨 있다.

바둑판의 가로줄 수 19와 세로줄 수 19를 곱하면 361로 대략 1년의 날수와 일치한다. 흑백의 돌은 음(陰)과 양(陽)이다. 좁은 판 위에서 두 사람이 하는 게임이지만 삶의 축소판이라 해도 좋을 만큼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기업 경영의 성패와도 닮은 점이 많다.

바둑은 본래 중국에서 탄생했지만 현대 바둑의 종주국은 일본이다. 현대 바둑의 규칙과 정석이 모두 일본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엔 우칭위안(吳淸源)이라는 한 중국인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얽혀 있다. 현대 바둑 혁명의 주인공으로 '살아 있는 바둑의 신',혹은 '기성(棋聖)'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우칭위안은 1914년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우며 자랐다. 공부엔 재주가 없었지만 열살 무렵부터 내기 바둑으로 가족의 생활비를 벌 정도로 성장했다. 당시 중국을 방문한 일본 프로기사들이 11세의 그와 우연히 대국을 벌였다가 그를 이기지 못했다. 소식을 들은 일본 기원이 당대 정상급 기사 하시모토 4단을 베이징에 보냈지만,두 번 다 소년에게 지고 말았다. 하시모토 4단은 이 소년을 일본에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고,그는 가족을 떠나 일본에서 기사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우칭위안은 일본 기원의 신진 기예로 성장하던 기다니 미노루와 의기투합, 바둑 연구에 몰두한다. 1930년대 초 20대의 우칭위안과 기다니는 몇 개월씩 산속에 은둔하며 바둑을 연구한 뒤 '신포석'이라는 혁명적 바둑을 선보인다.

신포석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첫수를 '화점'에 둔 것이다. 화점은 바둑판 위의 9개 점들 중 귀퉁이에 찍힌 4개의 점을 말한다. 이 화점에 첫수를 두는 것은 오늘날엔 너무 흔한 일이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백년 바둑 역사상 화점에 첫수를 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때로 바둑의 한복판인 '천원'에 첫수를 두는 수법이 연구된 적은 있었지만 화점에 두는 경우는 없었다. 바둑 첫수는 천편일률적으로 화점에서 가장자리로 한 칸 이동한 지점인 '소목'에 놓였다.

이 화점바둑으로 우칭위안은 당대 일류 고수들을 모두 쓰러뜨렸다. 이후 화점은 본격적으로 기사들의 연구대상이 됐고 점차 화점에 첫수를 두는 기사가 늘어났다. 우칭위안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바둑 첫수를 소목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칭위안이 천재라 불리는 이유는 그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우칭위안이 화점에 착수하는 순간 현대 바둑은 시작됐다.

소목에서 화점까지의 거리는 바둑판 위의 단 한 칸에 불과하지만 그 한 칸을 이동하는 데 수백년이 걸렸다. 그것은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고정관념이 만들어 낸 거리였다.

경영에서도 우칭위안과 같은 천재들을 꼽을 수 있다. 헨리 포드나 알프레드 슬로언,잭 웰치 같은 인물들은 한결같이 당대에는 교과서나 어떤 이론서에도 없는 혁명적 변화를 통해 사업 구조는 물론 산업계 풍경을 바꿨다. 그들은 기존의 상식과 어휘에 구애받지 않았다.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20세기 대량생산 시대에 갖춰진 전략 조직 리더십 인프라에 의존한다. 오랜 검증을 거쳤다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첫수부터 다시 검토해 봐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단 소목에 두고 그 뒤에 바둑을 잘 두는 게 아니라 왜 첫수를 소목에 둬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점을 소홀히 한다면 누군가가 화점을 들고 우리를 대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changsoo.han@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