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3시(현지시간)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00㎞ 정도 떨어진 인구 15만명 규모의 소도시 르망.56대의 머신(경주용 차량)이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을 내며 출발선을 치고 나갔다. 세계 3대 자동차 경주대회 중 하나로 꼽히는 '르망 24'의 막이 오른 것이다.

르망은 자동차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대회.13.65㎞의 서킷(경주용 도로)을 레이서 3명이 교대로 24시간 동안 달려 더 먼 거리를 간 팀이 승리한다. 평균 속도는 시속 300㎞ 이상.시야에서 차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반대 방향으로 사라진다. 남는 것은 차량보다 한 템포 늦게 귀를 파고드는 엔진음뿐이다.

◆자동차 메이커의 축제

이번 대회를 보기 위해 르망을 찾은 관람객만 23만여명에 달한다. 월드컵이 한창임에도 불구,예년 이상의 관람객이 대회를 찾았다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숙박시설 부족으로 대부분의 관람객이 텐트와 캠핑카 신세를 져야 했는데도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12살 난 아들의 손을 잡고 대회장을 찾은 니콜라스 살리니씨(42)는 "아들과 엇비슷한 나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대회를 찾았다"며 "3대째 르망을 보러 오는 셈"이라고 말했다.

르망의 주인공은 드라이버가 아닌 자동차 메이커다. 세간의 관심이 어떤 기업이 24시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머신(경주용 차량)을 만들었느냐에 쏠리기 때문이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 대회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는 출전팀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우승팀을 배출한 푸조는 4개,독일의 자존심인 아우디는 5개 팀을 각각 이번 대회에 내보냈다. 조금이라도 우승 확률을 높이자는 계산이다.

대회 운영에도 자동차 메이커들이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주력 차종을 전시하는 쇼룸,자동차 관련 기념품 가계 등은 기본에 해당한다. 일부 업체는 1년에 4~5일만 활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회에 초청한 VIP 고객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경기장 인근에 간이 호텔을 운영한다. 유명 가수들을 초청해 관람객의 흥을 돋우고,카트 체험장 등 테마파크에 준하는 놀이시설을 운영하는 업체도 있다.

◆내구성 강한 아우디가 우승

르망 참가 차량은 특성에 따라 4개 군으로 구분된다. 우선 경주를 위해 개발한 프로토타입 차량이 배기량에 따라 'LMP1'과 'LMP2'로 나뉜다. 일반 차량을 개조한 그란투리스모(장거리 운행용 차량)도 같은 기준으로 'LMGT1'와 'LMGT2'로 갈라진다. 관람객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차급은 속도가 가장 빠른 LMP1이다.

최고 클래스인 LMP1은 한마디로 '푸조 잔혹사'였다. 대회 초반에는 푸조가 압도적인 실력을 뽑냈다. 출전 4개 팀이 1~4위를 지키며 다른 메이커 차량으로 대회에 참여한 팀들의 기를 죽였다. 문제는 차의 내구성에 있었다. 5~6시간마다 한 대씩 선두로 달리던 차량이 고장을 일으켜 트랙을 이탈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대회 종료 2시간 전 푸조 차량으로 대회에 참여한 마지막팀 차량의 엔진에 불이 붙자 푸조 정비팀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우승은 아우디의 신형 R15 모델로 대회에 나선 마이크 록켄펠러,티모 번하드,로맹 뒤마 팀에게 돌아갔다. 2~3위 팀도 모두 아우디에서 배출했다. 순간적인 출력은 푸조가 우수했지만 내구성 면에서는 아우디가 푸조를 압도했다는 게 대회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르망 참가팀을 후원하고 있는 한국타이어도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한국타이어를 장착한 페라리로 대회에 참가한 도미닉 판바허,알란 시몬센,레만 맥그래쓰킨 팀이 LMGT2 클래스 2위에 오른 것.김세헌 한국타이어 상무는 "대회 참가 2년만에 입상 타이틀을 갖게 됐다"며 "한국타이어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된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애 참가한 차량 중 완주에 성공한 차량은 20여대에 불과했다. 그만큼 24시간 레이싱이 어렵다는 뜻이다. 경쟁이 치열했던 LMP1 클래스는 18대 중 5대만 끝까지 살아남았다.

르망(프랑스)=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