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신현송 "은행세 부담 고객에 떠넘겨선 안돼…내년초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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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국제금융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인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51)가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내정된 것은 작년 12월 말이다. 국제경제보좌관은 세계경제 흐름과 이슈를 꿰뚫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다. 특히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관련,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일각에선 학자 출신이 관료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책 보좌역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6개월간 신 보좌관은 G20 핵심 논의에 깊숙이 개입해 누구보다 앞서 방향을 제시하는 등 자신의 역할을 100% 이상 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21일 인터뷰에서도 각종 현안에 대해 달변을 쏟아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논리 정연하고 명쾌한 답을 제시했다. 오는 9월이면 1년간 안식년이 끝나 학자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그는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때까지는 자신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단을 잠시 떠난 소감은 어떤가요.
"힘든 면도 있지만 보람도 많았습니다. 일의 성격이 다르니까 학교에 있을 때처럼 거침없이 얘기할 수 없고 조심스런 측면도 있습니다. 9월 학기에 복귀해야 하는데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떠날 수 없어 학교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면 정책 경험이 학문 연구에 많이 도움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경제학은 실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자가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학문을 연구한다면 국가의 경제정책에도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그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없습니다. "
▼이달 말 캐나다 G20 정상회의의 주요 이슈는 뭔가요.
"당초 출구전략 공조 문제가 가장 큰 논의 과제였는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위기 극복을 위한 과제가 주로 논의될 것입니다. 특히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재정팽창과 긴축 문제가 중점적으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민감한 이슈인 은행세 문제는 캐나다가 워낙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이번에는 논의가 안 될 것 같습니다. 캐나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7월부터 모든 관심이 한국으로 넘어올 것입니다. 우리는 발벗고 뛸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동안 착실히 준비해온 우리의 독창적인 아젠다를 쏟아낼 것입니다. "
▼은행세 도입 논의는 소강 상태인가요.
"캐나다 등 몇 나라가 반대하고 있지만 미국 유럽 등 대부분이 긍정적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도입될 것입니다. 은행세는 크게 세 가지가 쟁점인데 (세금을 매기는) 적용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세율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세금을 거둔 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이견이 있습니다. G20에서는 도입 원칙에 대해 합의만 하고 세율은 국가별 형편에 맞게 다르게 적용하는 쪽으로 가는 게 유력합니다. "
▼은행세 부과 시점은 언제가 될까요.
"11월 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안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더라도 각국별로 도입하려면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하는 등 절차가 필요합니다. 빨라도 내년 초에나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국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관련 부처와 기관 실무자들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내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도입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
▼은행세가 도입되면 그 비용이 고객에게 전가될 것이란 우려도 있습니다.
"그건 성립이 안 되는 논리라고 봅니다. 은행세는 비예금 부채에 부담금을 물리는 것인데,평소에는 은행들의 비예금 부채가 많지 않습니다. 거품이 생기거나 위기가 터질 때 커집니다. 은행세는 비예금 부채가 비정상적으로 커질 때 이를 잡아주는 자동제어장치와 비슷합니다. 위기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입니다. 또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이 달러를 가져올 때 개인이나 기업에 직접 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선물환이나 스와프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세금을 매긴다고 해서 개인이나 중소기업에 부담이 간다는 논리는 성립이 안됩니다. 이런 오해를 막기 위해 세금이 아닌 '은행부과금'으로 명칭을 바꿔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
▼최근 정부가 발표한 외환시장 규제 대책이 자본통제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일부 외신 등에서) 자본 유출입 통제라고 얘기하는데 용어 자체가 틀렸습니다. 행정적으로 자본 유출입을 승인해서 임의로 막는다든지,토빈세(거래세의 일종)를 걷는 등의 방법이 자본 통제입니다. 반면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조치는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직접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에요. 이는 국제적인 논의 방향과도 완전히 부합되는 것입니다. "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이번 대책은 외환시장 변동성을 줄여 외화유동성 위기를 사전에 막자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사실 한국처럼 시장이 완전 개방된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없는데도 외국인은 다른 곳에 문제가 터지면 한국 자산을 먼저 팔아 헤징을 합니다. 프록시 헤징(proxy hedging)이라고 불리는데,애꿎은 한국이 다 얻어맞는 셈이죠.이는 지나친 개방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고무적인 것은 이번 규제에도 채권시장이 끄떡없었다는 점입니다. 일부에선 규제로 외국인이 채권을 팔아 떠나면서 시장이 출렁거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어요.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국채시장이 외국인 장기투자자들이 늘면서 그만큼 국제화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국내 채권시장이 헤지펀드들의 놀이터였는데 지금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
▼이번 대책의 핵심인 선물환 포지션 규제로 기업들의 환헤지 비용이 높아질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런던에 가면 도로 체증 과태료란 게 있어요. 이것이 도입된 이후 30분 걸리던 거리가 15분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불가피하게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비용이 생기지만 이로 인해 절대다수가 혜택을 보게 됩니다. 이번 선물환 규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수출 기업들 입장에서는 선물환 규제로 환헤지 비용이 상승하는 게 부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환헤지로 시장 전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 비용은 국민이 부담해야 합니다. 특정 세력의 수요 만족을 위해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거지요. 이런 사회적 비용을 기업들이 공동 부담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
▼추가 대책을 준비 중인 것이 있나요.
"일부에선 은행들의 외화 레버리지에 대한 직접 규제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하는데,예컨대 토빈세의 경우 과거 시행한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실효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달 초 은행부과금 최종 보고서를 내놓았는데,몇 페이지에 걸쳐 토빈세가 왜 적정하지 않은지를 분석해놨습니다. 토빈세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은행의 비예금성 부채에 부과금을 매기는 방안이 도입되면 은행들의 외화 차입금 비중을 직접적으로 줄여 외환시장 안정에 좀 더 강력한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
▼유럽 재정위기가 제2의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 재정위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슷한 점은 위기가 터지고 나서 모두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부실 규모가 서브프라임 때보다 작다는 것이고,우려스런 점은 재정위기가 터져 2008년처럼 신속한 통화 재정 확장 정책을 펼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조건이 더 안 좋다고 봅니다. 더구나 유럽 재정위기는 결국 은행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 있습니다. 한국도 영향이 불가피해요. 이번에 외환시장 규제 조치를 서둘러 내놓은 것도 이런 사태를 대비하자는 차원에서입니다. "
▼중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지해온 고정환율제(페그제)를 포기하고 관리변동환율제로 복귀했는데요.
"두 가지로 보면 됩니다. 캐나다 G20 정상회의에서 부각될 위안화 절상 압력을 사전에 누그러뜨리려는 상징적인 조치라는 성격이 있고,중국 국내적으로는 경기과열을 식히자는 의도도 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어느 속도로 얼마만큼 절상될 것이냐인데 시장에서는 대략 3~5% 절상을 내다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중국 발표 내용을 봐도 2005년 관리변동환율제 채택 당시보다는 소극적입니다. 일시적이고 급격한 조정보다는 점진적이고 약한 수준의 절상이 예상됩니다. 위안화 조정폭이 작아도 한국 원화는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특성상 단기적으로 평가 절상 압력을 많이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선물환 규제 조치는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홍영식/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신현송 보좌관은…
신현송 보좌관은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영국으로 건너갔다. 부친의 해외 근무 때문이었는데 이후 영국 이매뉴얼 고교와 명문 옥스퍼드대를 졸업했다.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옥스퍼드대와 런던정경대(LSE)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로 옮겼다.
1998년 투기자본의 외환시장 공격에 대한 정책 당국의 대응을 다룬 논문으로 학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하고 분석해 명성을 높였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문교수,영국의 중앙은행 고문,국제통화기금(IMF) 상주학자,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자문,필라델피아 연준 자문교수 등을 역임했고 뉴욕 연준 자문교수 및 금융자문위원회 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안식년을 맞아 지난 1월부터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