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영국월드컵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소련에 0-3으로 패하고 칠레와 1-1로 비길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지만 이탈리아와 예선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자 상황이 돌변했다. 평균 신장 162㎝의 듣도 보도 못하던 동양선수들은 엄청난 스피드와 체력,일사불란한 조직력으로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몰아붙였다. 결국 북한이 1-0으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하자 서구 언론들은 '재앙''동화' 등으로 놀라움을 표현했다.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가 이끌던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더 드라마틱했다. 북한 경기에 매료된 영국인 수천명이 응원한 덕분이었는지 북한은 전반 20분 동안 내리 3골을 넣었다. 포르투갈로선 정신도 차리기 전에 당한 꼴이다. 경험부족 탓에 시간이 갈 수록 체력이 달려 거푸 5골을 내주고 말았지만 북한의 8강 진출은 지금까지도 월드컵 대이변의 하나로 꼽힌다.

당시 북한이 쓴 전법은 이른바 '천리마 축구'다. 북한 전역에서 벌이던 '천리마 운동'을 축구에 적용,쉴새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출전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이 "제일 중요한 것은 잘 달리는 것,그 다음이 잘 차는 것과 전술"이란 교시까지 남겼으니 혼신을 다해 뛴 게 당연했다. 실제로 당시 북한팀의 명려현 감독과 선수들은 대니얼 고든 영국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천리마 축구단'에 출연해 그렇게 증언했다.

북한대표팀이 44년 만에 출전한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잇따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우승후보 브라질을 상대로 철벽수비를 펼치며 1-2로 아깝게 져 주목을 받더니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선 0-7로 대패하고 말았다. 월드컵에서 이처럼 편차 큰 경기를 한 사례는 드물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북한팀은 '괴상한 질문'에 시달렸다. 선발출전자를 지도자가 결정하느냐,성적이 나쁘면 어떻게 되느냐는 등의 질문이 나왔는가 하면 북한선수 4명이 잠적했다는 낭설이 떠돌기도 했다.

북한팀은 억울하다 하겠지만 그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게 문제다. 훈련을 비공개로 한 데다 돌연 기자회견을 취소하는 등 최소한의 소통조차 거부한 탓이다. 핵개발,천안함 사건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미운털이 박힌 터에 그런 비상식적 행동을 하면 누가 곱게 보겠는가. 25일 밤 11시에 열릴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북한팀이 또 어떤 이변을 연출할지 궁금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