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BIZ VIEW] 삼성 경영전략회의서 애플·소니 거론 안된 이유는…
지난달 24일 이건희 삼성 회장을 만났던 하워드 스트링어 소니 회장의 방한 목적은 전 세계적으로 물량이 달리는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공급확대를 요청하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올 하반기 전쟁을 방불케 하는 글로벌 TV시장 경쟁을 앞두고 한 대라도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하려는 소니 측의 다급한 사정이 작용됐던 것이다. 소니 입장에서 이 회담이 어느 정도 주효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요즘 삼성전자 TV사업부의 분위기를 보면 굳이 짐작 못할 것도 없다.

한 관계자는 "소니가 주문한 물량의 70~80%를 가져가는 반면 우리는 필요한 물량의 60%밖에 받지 못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경쟁사인 소니에 패널 공급비율을 더 높게 책정하면 앞으로 어떻게 시장을 장악해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섞여 있었다.

◆무궁무진한 소니의 구매잠재력


이 회장이 자사 TV사업부의 이 같은 사정을 알면서도 스트링어 회장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는 소니가 연간 5조원 안팎의 부품을 구매하는 '큰손'인데다 LCD사업에서 돈독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소니는 지난 1분기에만 1조2800억원 상당의 LCD패널 등을 구입해 '고객리스트' 1위에 올랐다. 세트와 부품을 양대 축으로 절묘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이 회장으로선 TV사업만의 이해관계를 따져 소니를 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향후 인터넷TV(IPTV)의 대중화를 앞두고 소니는 엄청난 양의 반도체를 주문할 가능성이 높다. 요즘 나오는 IPTV는 주로 D램 위주의 셋톱박스를 기반으로 생산되고 있지만 대용량 정보처리와 쌍방향 소통이 본격화되는 차세대 스마트 TV에는 그래픽 D램과 고용량 낸드플래시 같은 고가의 반도체 내장이 필수적이다. PC-휴대폰을 잇는 또 하나의 반도체 전용 디바이스가 개발된다는 얘기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반도체 호황이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스마트TV라는 새로운 반도체 시장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니로서도 LCD 분야에 샤프,반도체 부문에 도시바 등의 자국 기업을 활용할 수 있지만 양산능력과 납기의 스피드 등에서 삼성만한 거래선을 찾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부품-세트의 숙명적 아이러니

삼성과 소니의 미묘하고도 복합적인 관계는 애플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애플은 지난 1분기중 소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부품을 사갔다. 총 금액은 9000억원.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글로벌 시장을 휘젓는 정도에 비례해 삼성전자 세트 부문의 시름은 커질 수밖에 없지만 애플에 낸드플래시와 SSD(Solid State Drive:반도체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기기)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있는 반도체 사업부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을 노리고 있다.

아이패드가 출시 2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200만대가 팔려나갈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HP 델 레노버 등도 잇따라 태블릿PC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삼성이 강점을 갖고 있는 MCP(멀티칩패키지)도 더욱 불티나게 팔려나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반도체사업부가 콧노래를 부를수록 신종균 사장이 이끄는 무선사업부는 해외에서 죽을 힘을 다해 아이폰과 싸워야 한다. 삼성이 아이폰 대항마로 야심적으로 내세운 갤럭시S는 월 평균 10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신 사장은 이달 말 뉴욕으로 날아가 제품 발표회를 갖는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4에 맞불을 놓는다는 전략이다. 공교롭게도 아이패드에 대적하는 갤럭시 패드 역시 무선사업부 소속이다.

[조일훈의 BIZ VIEW] 삼성 경영전략회의서 애플·소니 거론 안된 이유는…
삼성전자는 22일 수원사업장에서 최지성 사장을 비롯해 400여명의 국내외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트 부문의 글로벌 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최 사장은 하반기 경영목표로 △글로벌 리더십 확보 △고객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역량 강화 △SCM 활용 생활화 △위기관리능력 제고 네 가지를 제시했다.

이날 회의 분위기는 비즈니스 환경의 급변과 함께 새로운 경쟁자,예전에 볼 수 없던 '킬러 디바이스'의 출현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최대 경쟁자인 애플과 소니의 이름은 단 한차례도 거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임원은 "같은 울타리 안에 있지만 호황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부품(반도체 LCD)쪽과는 다른 논리,다른 시장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세트부문 임직원들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차장 jih@hankyung.com